이럴거였으면 왜 시작한 거니?
밤새 잠을 설쳤다. 아이가 씩씩한 정식 군인이 되는 날이다. 어제부터 가지고 갈 음식과 행사에 늦지 않도록 시뮬레이션 해보는 시간체크까지 모든 준비가 끝났음에도 잠을 설쳤다.
심장이 널을 뛴다. 도착한 훈련소는 그리 번잡하지 않아 일단 이모들의 목적지인 피엑스에서 후다닥 쇼핑을 끝내고 행사장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구보하는 팔다리와 서있는 발의 각도까지 칼각을 지키는 대한민국 육군 청년들이 멋지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서 내 아이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행사시작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이찾기가 너무 어렵다. 점점 불안하고 속이 상한다. 안내장에 버젓히 적힌 아이의 이름에도 도통 보이지 않는다. 겨우 찾아낸 아이의 얼굴에 울컥 눈물부터 흐른다. 행사의 마지막 코스, 달려나간 운동장에서 아들을 부둥켜 안는다. 일병계급장과 태극기 마크를 군복에 붙여준다. 기특하고 대견하다. 다치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잘 지내는 모습에 감사했다. 먹고 싶었던 것들을 먹느라 시간을 다 써버리고, 부대로 복귀하는 뒷모습은 각잡힌 군복에 가려져있지만 여전히 어린 아들의 모습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시 심장이 널을 뛴다.
피곤하다. 빡빡하던 일정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 의미없는 티브이 방송을 보며 잠을 불러본다. 아이는 오늘 밤 편안할까? 온통 5주일만에 본 아이생각이다. 그래서였을까? 멍때리며 누워있던 나는 현실감이 조금 부족한 상태였나 보다. 방송에서 떠들던 연애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대통령이 속보로 뜬다. 계엄령 선포에 꿈을 꾸고 있나 싶다. 아차! 옛날 옛적 화면으로 보던 계엄시대의 영상이 떠 올랐다. 모두가 피해자였던 그 시절 그 모습.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 아이는 오늘부터 육군 일병이 되었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는 대한민국 군인 말이다. 그런데 계엄령이라니?
밤새 국회앞의 상황을 전하는 뉴스에 눈을 붙였다. 채널을 돌려대며 새로운 소식을 찾는다. 연락할 수 없는 아이가 제일 걱정이다. 이것도 저것도 모르겠고 그냥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다. 연이틀째 피곤하다.
패착이다. 누가봐도 그러하다. 바보같다. 부끄럽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뽑았든 남이 뽑았든 다른 나라에서 볼때 우리들의 대표얼굴이라는 사람이 바보짓을 했다. 누구의 책임일까?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우리는 또 얼마나 가슴 졸이거나 부끄럽거나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할까? 이런 것이 나에게는 패착이다.
짜증이 난다. 이틀째 아이는 연락이 안된다. 당연히 훈련소에서 이동하는 중이라 그런건 알지만. 우리는 열심히 돈을 벌고 세금을 떼이고 때가 되면 아이를 군대에 보내고 선거철에는 각종 공익 광고에 영향을 받으며 소중한 한표를 행사한다. 온갖 의무를 열심히 수행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티브이속 회의장에는 자리가 텅텅 비었네. 저들은 내가 낸 세금으로 뭐하는 짓인지, 반대하더라도 자리는 지켜야 하는게 그들의 의무가 아닌가? 정치는 모르겠다. 나는 소액이지만 꼬박꼬박 세금 내는 국민이다. 매번 뉴스에서 보는 회의장 빈자리는 여전히 화를 북돋운다. 그래서 오늘은 곱빼기로 짜증이 난다.
겨우..,
이럴려고 시작한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