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온통 안개로 뒤덮인 채 하루가 시작되었다.
앞차의 불빛만이 짐승의 눈 마냥 빠알가니 위험을 알리고 엑셀레이터를 밟는 발을 멈칫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희끄무래한 새벽은 공기조차 축축하여 달리는 자동차의 궤적에 따라 물길이 생길것만 같다.
어제 저녁 엄마가 말했다.
늦은 퇴근 길이었다. 채 신발을 벗지 못한 딸의 귓가에 들리는 엄마의 투정같은 말에 순간 다리가 멈짓한다.
"오늘부터 엄청 춥다.한파주의보가 내렸다네. 그래서 아무데도 안가고 놀러갈 곳도 없고 해서 하루조옹일 누워있었네. "
답답도 했겠다. 평생을 밖으로 돌아다니던 엄마였다. 그래서 철없던 시절에는 그게 싫어 엄마가 미웠다. 낮시간에 집에 있는 엄마를 본 기억이 별로없다. 이렇게 말하면 오해하겠지만 엄마는 평생 전업주부였다. 전국 안 가본 곳이 없고 발도 넓어 아는 지인이 지천이었다. 그랬는데도 세월은 비켜가지 못했다.
좋다는 곳으로 여행을 함께 하던 전용 운전수 아빠는 병환으로 병원을 드나드신지 오래 되었고 본인도 자주 아프고 다쳐 입퇴원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맥을 이어오던 놀이팀이 와해되었다. 더러는 돌아가시고 더러는 요양원행이었고 나머지는 두문불출이다. 몸이 버티지 못하니 외출도 그림의 떡이다. 그나마 건강한 친구는 매번 엄마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엄마는 늙어버렸다.
어젯밤 엄마의 말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새벽 안갯길을 가른다. 축축해서 물방울이 떨어질것만 같은 차 안에서 엑셀을 밟는다. 한치 앞이 안보여 뻔히 아는 길이건만 마치 벼랑끝을 마주할것만 같은 조마조마함으로 줄곧 브레이크에 발을 올린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고 앞은 벼랑이 기다릴것만 같다. 엄마도 지금 이런 마음일까? 그래서 저렇게 힘없는 목소리로 지친 딸의 뒤통수에 넋두리를 쏟아붓는건가?
오늘따라 엄마가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얼마남지 않은 나의 미래로 감정이입이 되나보다. 그렇게 당차고 여장부같던 엄마는 할매가 되었다. 이제 상노인이 된 모습에 온종일 마음이 무겁다.
갑갑하고 두렵던 안개낀 도로의 출근길은 시간이 가면 걷히고 밝아질 것이다. 이건 진리다. 그런데 늙고 지친 엄마의 안개가 걷히면 그때는?
자식으로서 나이를 먹어가는 건 이런 거였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옆에 있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붙잡고 싶은 그런 욕심, 해 준게 없어 미안해서 조금더 붙잡고 싶은 미련 아마도 그런게 아니겠나.
미안 엄마.
혼자 외롭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버텨 줘.
조금만 더 철들수 있게 딸 옆에서 버텨 줘.
그래 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