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여행, 운동.
티브이 속 세상은 온통 이런 것들로 가득하다.
드라마로 눈물 쏘옥 빼거나, 달달한 러브스토리에 심장 폭행당하는 그런 드라마를 즐기는 일은 줄어 들었다. 뭐 그런 것들이 대세라니 어쩌겠는가. 다행인 건 그 대세 속 세상에도 나를 자극하는 것이 한가지쯤은 존재한다는 거다.
휴일, 찜통같은 밖을 피해 침대에 기대어 티브이를 본다. 그 속에는 요즘 대세라는 유투버들이 작대기에 달린 쪼꼬만 카메라를 손에 들고 나의 상상속에서만 꿈꾸던 우유니 사막과 칠레 거리를 걷고 있다. 그래서 어떤 달달한 러브스토리보다 심장 폭행을 당하는 중이다. 꿈만 꾸어 오던 곳을 눈으로 여행하는 그야말로 대리 충족의 끝판 왕이다.
여행을 참 좋아했다. 여행을 위해 살고 싶었다. 배낭을 메고 골목을 누비는 낯선 도시, 나라는 그 설레임도 특별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민족의 친절한 미소가 좋았다. 그래서 특히 가기 힘들고 척박할수록 다녀온 후의 만족감은 극적으로 치쏟는다. 유명한 곳은 대부분 교통이 잘 발달해 있고 관광객이 쉽게 접근하는 곳으로 너도 나도 갈 수 있으니 희소성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낀 정보를 공유하니 흔한 풍경이 되어 감동이 떨어진다고 해야하나?
몇 십년 전부터 버킷 리스트처럼 가슴 속에 차곡차곡 채워 두었던 장소가 있다. 그 중 한 곳을 누워서 지켜 보는 중이다. 부러워서 짜증이 난다. 언젠가부터 포기해야만 했던 여행지. 나이가 들어 관절이 아프고 직장도 있다. 장기 여행은 꿈도 꾸지 못 하게 되었고, 예전처럼 배낭을 메고 거리를 누비며 다니는 여행은 이제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쉽게 접근 가능한 페키지 여행에 나를 맡겨 버린지도 꽤 되었다.
티브이 속 저들을 보면서 수 십년 전 내가 생각났다. 어깨를 짓누르는 베낭의 무게도 열정을 이기지 못했던 그때를. 20킬로 베낭을 메고 몇 시간을 걷고 다녔던 그 시절을 나는 오랜만에 추억하고 있다. 여전히 그때의 열정과 감동이 기억났다,
그래서, 지금 나는.
꺾여 버린 인생과 건강을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다시 도전할 수 없다는 미련도 이제 버려야겠다. 다행인 건 대리 만족을 위한 수 많은 컨텐츠가 발전해 있다는 거, 그리고 나 대신 젊은 다리로 용감하게 내가 원하는 곳을 다녀 주며 영상을 올려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이런 위로라도 있으니 되었다.
나는 지금.
우유니 사막의 반사된 하늘을 보며 몽골의 초원 호수에 반사된 하늘을 추억한다. 말등에 앉아서 한 시간을 달려 마주했던 초원 호수의 반사된 하늘과 호숫가에 앉아 얻어 마셨던 전통 차의 신기한 맛을 기억한다. 추억과 새로운 경험의 기억을 타인의 경험치를 통해 화면으로 느낀다.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만나는 타지의 풍경이 반갑다. 이런 풍경으로 심장이 다시 뛰고, 페키지 여행이라도 꿈꾸는 내가 좋다. 대리 만족도 나름 가치있다는 걸 발견하며 새로운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중이다.
지금 나는,
내일부터 다리 근육 강화 훈련을 시작하고, 내년이 아니면 후내년에라도 리장고성에 다녀와야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첫 배낭 여행을 시작하며 언제나 꿈꾸었고 꼭 다녀와야겠다고 목표를 세웠던 그곳으로, 언젠가는 꼭 가야겠다는 새로 쓰는 버킷리스트로 다짐 중이다.
그러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