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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by 완뚜


지구가 끓어 넘치고 있다. 가열의 자극을 무시하지 못한 하늘은 폭풍 같은 눈물을 뿌린다. 잘난 척, 똑똑한 척, 자만이 하늘을 찌르던 인간의 나약함이 한순간에 드러나고 만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고통과 우려로 들끓는 중이다.


온난화라는 단어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유순한 느낌의 단어이다. 사실상 타는듯한 더위와 극적인 날씨 변화로 죽고 다치고 터전을 잃는 시국이 도래했건만 우리는 아직도 온난화라는 단어로 위험성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폭우에 늘어나는 사망자 수를 보며 재난을 넘어 재앙이 말하고 있다. 산불이 재앙이라 소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비가 재앙이 되었다. 여름의 시작을 참으로 거하게 알리고 있다.


여름이 시작되었다. 연일 고온을 갱신하는 날씨에 기진맥진, 사람들의 얼굴은 혼이 빠진 듯 힘이 없다. 오랜만에 찾은 단골 식당의 친절한 사장님 부부와 직원의 얼굴에는 땀이 번들거린다. 최저 온도로 설정한 에어컨이 여러 대 돌아가는 매장을 누비면서 일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 미소는 없이 손님 접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몇 년 동안 단골이었던 집인데 풍경이 영 어색하고 낯설다. 어쩌겠는가? 연일 푹푹 쪄 대는 날씨에 누군들 버티겠는가. 익숙하지 않은 날씨에 적응하느라 인간의 본성도 바뀌는 거 같아 씁쓸하다.


여름이면 내리쬐는 햇살이 강해질수록 목청을 높이는 녀석들이 있다. 어찌 들으면 먼 듯 가까운 매미의 소리는 여름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공간을 점령한다. 소리는 높고 크다. 시원하게 내지르는 공간 장악의 힘이 놀랍다.


철부지 갈래머리 아이는 오늘도 외갓집 대문을 나와 신작로를 달린다. 시골의 국민학교 마당에 서면, 아이들은 방학이라 학교는 비어 있다. 외갓집에 다니러 온 갈래머리 꼬맹이는 매미 소리와 벗이 된다. 혼자인데 외롭지 않은 건 매미들의 합창을 듣는 이 시간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철이 들고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매미들의 합창은 노곤하게 지쳐있는 나에게 청량제가 되어준다. 다행히 매미가 멸종될 거 같지는 않다.


나의 여름은 외할머니의 허리춤에 꽁꽁 묶어둔 복주머니 속 쌈짓돈 백 원과 매미 소리 가득한 운동장으로부터 시작된다. 매년 잊지도 않고 찾아오는 매미 덕분에 여전히 추억이 반갑고 더위를 참아내는 나만의 피서법이 되기도 한다. 너무 더워 지치면 잠시 손을 놓고 눈을 풀고 그때 그 시절, 수십 년 전의 어느 날들을 기억한다. 다행히 아직 기억력에는 이상이 없다. 꽤 오랜 시간 기억되는 행복한 추억이 여름과 함께였다.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시작점의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이렇게 생긴 인생의 변곡점은 슬픈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지. 추억 속에서 언제나 따뜻하던 할머니도 이제는 볼 수 없다. 이제 나는 여름이 되면 추억이 의미를 달리하게 되었다.


여름은,

공간을 채우는 매미의 합창과 함께 떠오르는 외갓집의 추억으로 시작하고, 가을을 앞둔 어느 여름 끝자락에 잃어버린 한 사람을 기억하며 가을을 맞는다. 그렇게 시원하고 잔잔한 행복으로 시작하여 아픈 이별로 끝이 나고 만다.


나의 여름은,

그래서 여전히 따뜻하고, 여전히 애잔해서 슬프다. 내년에도 여전할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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