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즘 관심사)
매 순간 나를 붙잡아주고 일으켜 주는 건 꿈이며 희망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종의 계획이다. 그것은 나를 위한 설계이며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한결같았던 이상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사건 앞에서 완전히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그것은 의지와는 상관없는 놀라운 경험이며 심경의 변화다.
그리고 나의 목표는 바뀌었다.
살아가는 이유, 살아야 할 이유는 유일한 가족, 아들에게 집중되었다. 아픔에 취해 돌아보지 못했던 곳에서 혼자 아파하며 웅크리고 있던 아이를 보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눈이 번쩍 떠지고 정신이 들었다. 미친 거 아니냐고, 저 아이가 보이지 않냐고, 덩치만 다 큰 아이가 웅크리고 혼자 아파하고 있는데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정신없이 질타했다. 두 번째로 무너지던 나를 붙잡았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더 큰 힘으로 버티며 시선을 돌렸다. 아이만 보기로 한다. 살자. 둘 다 살아보자.
나는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지구는 나를 위주로 돌아갔고, 내가 없으면 세상이 천국인들 무슨 의미이겠는가, 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예전의 나는 다소 교만했다.
이제 삶의 큰 축 안에서 나를 지운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마음도 버리기로 한다. 욕망도 버린다. 딱 하나 남은 유일한 가족을 위해 삶의 목표를 변경한다. 아니 변경당했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일종의 집착으로 변질된 위험한 방향 전환일지도. 그럼에도 목표의 변경은 오히려 삶의 의지를 만들어주는 중이다.
그가 떠난 5년은 참 길고 아팠다. 내가 흐려지고 없어지던 그 지루하고 고단한 시간. 잘 버텼다 칭찬하고 싶지만, 사실은 잘 버티지 못했던 시간이다. 집착에 가깝게 삶의 방향은 아이에게 향하고, 슬픔은 속으로 삭히며 혼자 울었다. 당당하고 싶고 여전히 힘든 모습은 보여주기 싫다. 무너지고 아픈 모습은 감추고 우리를 지켜내고 싶다. 매일 밤, 혼자 남은 방에서 하루를 돌아보며 잘 감추고, 잘 견딘 나를 칭찬하고 싶지만, 태풍처럼 밀려드는 고단함과 슬픔이 주위를 채운다. 신기할 정도로 아무도 없는 적막감이 펼쳐진다. 아이는 나라에서 자유를 묶어두었고, 나는 자유로운 이 공간이 견딜 수 없이 괴롭다. 옆방에 누운 친정엄마가 들을까 눈물은 목으로 넘긴다. 아직도 나는 참는 중이다.
버릴 것이 참 많다. 인생의 목표를 완전히 바꾸면 세상도 완전히 뒤집힌다. 욕망도 욕심도 애정도 자존감도 다 버린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질 것만 같다. 혼자서 엉뚱한 고집을 부리며 삶을 애착한다. 나는 아직도 살아야할 목표가 있다며 버티라고 나를 채찍질한다.
나의 요즈음,
그가 떠나고 4번째 맞이하는 8월과 9월,
아프고 힘에 겨운 요즈음,
이제는 그만하고 싶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어떻게 설계해서 어떻게 준비해 줘야 할까? 나를 버리고 너를 살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가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일, 유일한 나의 관심사는 아이의 안전한 미래가 되었다.
노력에 비해 인생은 뜻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목숨 줄처럼 옴팡지게 부여잡고 고민과 시간을 쏟는다.
나는 외골수 엄마로 목표를 전환한다.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 위해, 더는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그 아이의 삶을 위해 뒤에서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기 위해 이를 악물고 나는 버티기로 한다.
이런 길이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아직은 다른 관심사를 찾지 못한 까닭이며 살 수 있는 이유이기에 나는 여전히 그 길에 선다.
지금은 그렇다.
방향키를 잃은 조타수는 감각 하나만으로 집중해 나가는 것밖에 살 수 있는 길이 없어 보이므로, 가다 보면 다른 섬도 보이고 육지도 보이겠지만 그때까지는 전진하는 것만이 살 수 있는 길이므로. 나도 망망대해에서 길 잃은 작은 배가 되어 섬 하나만 보고 나아간다. 아이라는 작은 섬, 망망대해의 보일 듯 말 듯 내 시야에 잡힌 그 여린 아이 하나만 보고 전진한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