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글을 읽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옥'.
돌아가며 자신이 쓴 글을 읽고 그 글에 대한 평을 나누고 있는 이들은 아줌마들이 모여 10년째 이어온 글쓰기 모임이다. 주절주절 일기 같은 신변잡기를 나누지만, 어떤 모임보다 따뜻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곳이다. 수다스러운 아줌마가 모여 쓴 글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본인들의 이야기이고 덕분에 감정이입도 빠르다. 유독 눈물이 많은 옥이는 사랑스러운 눈웃음이 매력 포인트이며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귀여운 사람이다. 글을 읽으며 눈물을 보이며 목소리까지 잘게 떠는 옥이를 보며 우리는 “또 운다.”라며 놀리다가 결국은 함께 눈물을 글썽인다. 다른 이의 글에도 조심스럽게 눈물을 훔치고 남의 슬픔에도 먼저 공감하며 가슴 아파한다. 옥이를 떠 올리면 가늘게 떠는 목소리로 조용히 울먹이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이미 그녀의 목소리에 세뇌라도 당한 것 같다. 이름처럼 보석 같은 사람이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모여 터를 잡은 이곳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옥이는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수한 외모의 아줌마다. 늦둥이 공주님을 키우기 위해 도서관이 필요했던 그녀는 열심히 이곳을 오가고 덕분에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적당히 이기적이던 내가 보기에 그녀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매사가 진심이다. 도서관을 오가며 만나던 그녀와는 글쓰기 모임으로 조금 더 친밀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고 횟수를 거듭하며 관계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들은 순한 인상과 다독(多讀)의 향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 평범하되 평범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녀 역시 그런 사람이다. 말은 진실하고 속 깊은 인상을 받게 한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눈은 반짝이며 인간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보인다. 이기적이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이곳은 나의 힐링 포인트가 되어주고 있다. 처음 만나도 오래된 것 같고 오래되었으나 신선한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사실 그들 중의 한 사람인 그녀의 첫인상은 별 특이점이 없었다. 특별함 속에 묻혀 있던 더 특별한 사람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화장기 없는 뽀얀 얼굴 가득 죽은 깨가 귀여운 그녀는 도서관 관리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다. 바빠죽겠다고 노래 부르고 얼굴은 지친 듯 피곤이 묻어 있지만, 일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도서관이 그렇게 긴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는 건 이런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고 지금은 그 역할의 한 부분을 그녀가 맡고 있다. 그래서 그녀를 볼 때면 매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나서야 지인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기고 정확한 선 긋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대의 진심은 지독한 슬픔 후에야 보였다. 안타깝게도 그랬다. 우군에 줄 세워 두었던 사람과 적군에 세웠던 사람이 뒤엉켰다. 관례적인 위로의 말은 사실 위로가 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위로를 전하고 형식적으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눈빛에 한점 진심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 또한 진심이지 않은 말을 던졌다. 위로의 말은 내게로 향하는데 그의 눈빛은 다른 곳을 배회하며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모든 감정은 슬픔에 잠식되어 있는데 새로운 감각이 생겨나 제삼자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냥 어깨 한번 툭 쳐주고 가는 것이 때로는 위로가 된다는 것도 알았다. 눈빛과 손짓만으로도 그들의 언어는 위로가 되어 심장에 닿았다. 이런 위로의 언어를 통해 나는 살아남아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다. 나의 세상은 그때로부터 다시 재정비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의 위로는 특별했을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그들은 한결같이 나를 기다려 주고 눈빛으로 위로를 전하고 함께 아파했다. 눈빛 속에서 적나라한 그들의 감정을 보았다. 그래서 위로가 되었던 거다. 나의 인간관계는 별일이 생긴 후부터 많이 변했고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던 사람이 옥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지인에게 사랑받고 있는 옥이를 지켜보며 역시 내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그녀는 나에게 참으로 예쁜 사람이었다. 입으로 뱉어내는 언어는 없지만 눈빛과 손짓으로 위로를 보내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진심을 수용했다. 먼저 빨개지는 눈가와 일그러지는 입매, 내 어깨에 내려앉은 손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그녀의 모든 몸짓이 언어가 되어 심장의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함께 울어주는 그녀의 감정이 서로의 심장으로 넘나든다. 힘없이 넘어지려는 나를 매번 일으켜 세웠다. 깨달음으로 관계는 새롭고 깊어졌다.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나는 매번 일찍 이곳에 온다. 한주의 고단함을 털기 위한 나만의 루틴이다. 따뜻하게 맞아 주는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발걸음이 가볍다. 맑은 미소를 기대하며 문을 연다. 슬픔이 묻은 얼굴로 우리를 맞아 주는 그녀가 있다. 순간 당혹스럽다. 공기 속에 묵직한 우울감이 내려앉아 있다. 그녀가 여전한 질문을 던진다.
“별일 없나?”
나의 별일 이후로 매번 묻는 첫 질문이다.
“별일 없지. 맨날 똑같지. 너는 별일 없나?”
살짝 내린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있고 금방이라도 맑은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모습으로
"그냥, 사는 게 좀 그렇네."
"왜? 뭔 일인데?“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무심히 대답한다.
"요즘 주위에 슬픈 일이 너무 많네. 오래된 친구가 세상을 떠났고 친척들이 돌아가시고 친구의 남편이 아프네. 나는 왜 이렇게 힘이 빠지고 슬픈지 모르겠다. 언니야!"
말끝에 묻어나는 미소가 슬퍼서 순간 울컥한다. 친구와 가족들의 고통에 더 아파하는 그녀의 슬픔이 전이된다. 얼마나 아플지 너무도 잘 보여서 덜컹 걱정부터 하게 된다. 미소 천사 옥이가 슬프다. 나도 슬프다.
언젠가 나는 타인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책을 많이 읽고 잡기에 능해지면 말의 힘으로 그들의 고민을 제압하고 잘난 척 훈수를 두며 그렇게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개발서도 많이 뒤적였다. 머리로 옛날 책장을 들추어 쏟아내는 말은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그땐 몰랐다. 사람은 겪어보고 아파봐야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옥이가 주는 무언의 위로는 백 마디 말보다 쉽게 스며든다. 진심이 보이는 이유다. 어떤 마음이기에 저렇게까지 세상일에 진심일 수 있을지 파헤치고도 싶다. 머리로 하는 위로만 장황했던 예전의 나를 조금씩 바꾼다. 옥이처럼 그 눈빛처럼 되고 싶어서 자꾸 지켜보게 된다. 사람 쉽게 바뀌지 않지만 그래도 바뀌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나는, 천사 하나가 곁에서 등불처럼 버티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강렬하지 않고 따뜻해서, 위로가 되는 작은 등불 하나가 있다고 자랑하고 싶다. 그녀를 보면서 ‘나도 타인에게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감히 품는다. 가슴으로 전하는 위로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그녀의 옆에 10년을 버텼으니 나도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마음이 아프면 그녀를 찾는다. 그녀가 풀어내는 남다른 위로를 받기 위해. 그녀가 보는 세상의 긍정을 배우기 위해. 옥이는 동네에 흔한 중년 아줌마이면서도 흔하지 않은 위로의 아이콘이다. 그래서 그녀는 오래 보아야 더 아름답다. 참된 모습은 위로를 받는 그때에야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옥이같은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온 나도 칭찬 한다. 잘했다. 잘 살고 있다. 그리고 고맙다. 옥아!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