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의미

by 완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디와 나뭇잎을 보면 가슴이 울렁인다. 울렁임은 쉬이 가라앉지 못하고 자꾸만 나를 꼬드긴다.

'나가자. 나가자아! 나가자고오.'

정작 나는 용기가 없다. 혼자 나갈 용기, 혼자 즐길 용기. 그런 것들이 내게는 태부족이다.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술렁임이 시작되면 누군가에게 전화해 어떻게든 내 옆자리에서 함께 걷도록 만들었다. 그랬었는데. 내게 여행은 지나가 버린 기차이며 상해 버린 음식이다. 돌이킬 수 없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여기며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가족은 마치 역마살이라도 낀 것처럼 밖으로 나돌았다. 휴일만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고 해도 과인이 아니었다. 휴일이 오면 전날부터 장소를 정하고 갈 곳의 정보를 수집한다. 당일 아침에는 집 냉장고를 털어 먹거리를 챙겨 자동차 트렁크에 넣는다. 옆에는 돗자리와 간이 의자 두 개 그리고 무릎 담요가 항상 실려있다. 목적지는 분명하지만, 가는 길에 마주한 어느 곳이든 마음만 통하면 차를 멈춘다. 여름날, 강변에 차를 세우면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물에 뛰어든다. 차의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진 몸을 뜨거운 태양 아래 두고 발은 맑고 시원한 물에 담근다. 간이 의자는 그와 나의 엉덩이를 간신히 버티지만 나름 천국이 따로 없다. 이미 신발과 양말은 벗어 던졌고 발은 찰방찰방 물장난이다. 아이는 물속에서 잘도 논다. 그렇게 여름을 즐긴다. 다 큰 어른도 아이처럼 즐겁다. 그는 옆에서 연신 시원하다 노래 부른다. 한가롭고 즐거운 풍경, 우리 가족의 여행 풍경이다. 가족여행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도 좋았지만, 소소한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둘이 눈을 맞추며 웃고, 아이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행복하고 슬그머니 잡는 손이 좋았다. 그래서 더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혼자 배낭을 메고 잘도 떠났던 솔로 시절은 결혼과 함께 바뀌었다. 가족여행에 익숙해졌고 함께하는 즐거움에 물들어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뭐든 해 주는 사람 덕분에 편리함에도 익숙해졌다. 생각해 보면 혼자 다니던 여행은 그곳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새로운 문화와 자연환경을 남들보다 먼저 즐긴다는 짜릿함에 열광했다. 그곳에 갔다는 자극이 전부였다. 아마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즐거움이 아니었겠나 싶다. 결혼 후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달랐다. 목적지는 있었으나 언제든 바꿀 수 있었다. 그때는 가는 길에 이루어지는 행위들이 모두 여행이었다. 먹고, 보고, 멈추었다가 출발하는 과정, 그리고 토닥거리는 말싸움조차 여행이다. 아이가 뒷자리에서 부르는 노랫소리는 어떤 가수보다 감동적이었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즐거운 길동무였다. 함께 하며 웃고 즐기는 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만들어 주는 과정이었다. 가족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함께 한다는 것. 그래서 남는 모든 기억이 추억으로 각인된다.


지금,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우리는 그의 빈자리를 의식하고 있다. 여행보다는 버티는 힘이 필요했다. 삶이 버겁기만 하고 아이도 그랬을 것이다. 셋과 둘은 분명히 달랐다. “나가 볼까?”라는 말조차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은 애도해야 할 것만 같고, 둘이 나가는 행동이 어색해 행복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삶이 발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움직이지 말라고. 예전처럼 돌아다니지 말라고. 너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자유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많은 것이 변했고 많은 것이 어쩔 수 없다. 변명처럼 마음을 가뒀다. 평생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여자가 스스로 자유를 박탈했다. 그랬다. 누구도 권하지 않았던 박탈이었다.

밖은 온통 반짝이고 쏟아지는 빛이 유혹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언제나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변함없이 예쁘고 반짝여 빨리 다시 만나자고 말을 건다. 미디어에서도 여행 컨텐츠로 나를 현혹한다. 그냥 좋았다. 그들이 보여주는 관광지가 좋았고, 여행지에서 인터뷰하는 가족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부러운데 슬펐다. 덕분에 속은 수선스럽다. 나가자며 마음의 소리가 외치고 있다. 그러나, 입술과 눈은 불퉁거리며 찌그러진다. 나와는 상관없이 반짝이고 있는 이런 날. 하고 싶은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의지를 잃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만 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혼돈은 계속되었다. 그럴 때였다. 아이가 이기적인 엄마의 등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고민 끝에 내놓은 아이의 말에 깨닫고 말았다.

“엄마, 나 군대 가기 전에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어렵게 꺼낸 아이의 말에 순간 말을 잃었다. 눈치를 보던 녀석이 시간도 안 되고 돈도 없지? 라고 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있지, 돈도 있고 시간도 있지. 가자 여행. 회사에는 눈치껏 휴가를 냈다. 비행기와 숙소와 렌트카까지 예약하고 아이에게 일정을 공유했다. 여행 일정은 짜보라며 넘겼다. 그렇게 세 가족에서 두 가족으로 변한 우리 가족의 첫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두 명이 어깨를 펴고 비행기에 올랐다. 첫 도전이었다.

여행은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고 나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는 자랐고 눈치가 생겼고, 배려가 늘었다. 잃어버린 시간 동안 아이도 나도 변했다. 나는 좀 더 늙어 체력이 약해졌고 무감해졌으며 쉽게 지쳤다. 아이는 성인이 되어 책임감이 생겼다. 잘 넘어지는 엄마의 팔을 아빠 대신 잡고 다니는 아들이 대견했다.

몇 년 동안, 여행은 아픈 기억이었다. 즐겁고 행복했던 모든 것이 영원히 행복으로 남는 건 아니다. 즐거운 기억을 많이 만들어두면 마냥 좋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순간에 슬픔이나 아픔으로 변질되어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조금씩 날개를 펴고 비상을 시작한다. 아이와 둘이면 어떤가? 가족은 가족인 것을. 서로 조금만 양보하고 빈자리를 채우면 되는 것이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됐다. 그렇게 우리는 오랫동안 만들어진 껍데기를 깨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낯설지만 새로운 추억도 만들었다.

이제 나는 입대한 아이를 기다리며 새로운 것을 상상한다. 돌아온 아이와의 여행을 계획한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예전 같은 의미는 아닐지라도 여행으로 생길 우리의 추억에 의미를 두고 새로운 행복을 만들어 보려 한다. 셋에서 둘로, 여전히 건재한 우리의 여행을 위하여.

나는 살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