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프게

85세 장여사의 하루

by 완뚜


"잠도, 잠도 이렇게 안와서야 사람이 살겠나. 죽어야지. 어서 죽어서 영감한테 가야지."

밤새 뒤척이다 허전한 뱃속에 무언가를 밀어 넣는다. 딸이 퇴근하며 들고온 떡이나 빵 혹은 과일들이 식탁에서 나를 기다린다. 애써 시간을 확인하지는 않는다. 잠이 오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는다. 보통사람들과 나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꼭 챙겨야 할 사람도 없고 혼자 알아서 하다 보니 밤낮이 바뀌었다. 내일 아침에도 딸이 잔소리 폭탄을 하겠구나 싶다. 새벽에 일어나 먹을 걸 찾아 먹는다고 매번 잔소리 중이다. 건강에 안좋다는데 이 나이에 건강 걱정까지 해야 하나 싶어 한 귀로 흘려 버린다.

오늘도 느즈막이 일어나니 딸은 출근하고 커튼이 쳐진 거실은 밤처럼 어둡기만 하다. 한나절을 자고 일어나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는다. 어제 남긴 밥을 억지로 욱여 넣는다. 밥을 해 봐야 매번 찬밥으로만 남으니 있는데로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멍하니 식탁에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려고 일어선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빗자루를 든다. 청소기는 무거워 힘에 부친다. 그래서 비질만 대충하게 된다. 그것도 쉽지 않다. 잠깐 왔다갔다 한 것 같은데 지친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파 앓는 소리가 절로 난다. 청소기가 무겁다고 했더니 딸이 가벼운 청소기를 사 주겠다는 걸 돈 쓰지 말라고 말렸다. 말리기는 했지만 조금 탐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내색은 않는다. 대충 이리저리 설렁설렁 먼지까지 훔치면 청소 끝. 둘러 봐도 할 일이 없다. 딸이 합가하며 구입한 커피머신으로 오늘만 세번째 커피를 내린다. 허전한 마음을 채우는 검은 액체가 신통하다. 믹서커피를 끊고나니 위가 쓰리던 현상이 많이 줄어 연신 검은 커피를 마셔댄다. 여전히 시간은 참 안간다. 이리저리 전화를 건다. 사촌 언니에게도 친구에게도 근황을 묻는다. 어제도 물었고 그제도 물었던 이야기가 오늘도 오고 간다. 다리가 아파 자식들이 요양병원으로 보내 버린 친구는 전화만 하면 운다. 서러워 죽겠다고, 버림받았다고 운다. 이 친구 이야기를 하니 딸은 자식들이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어 보낸 거라고 버린 게 아니라며 편을 든다. 유유상종이라 자식의 입장을 잘 아나보다. 그래도 친구가 불쌍하다. 나는 저런 신세가 아니라 감사해야 하나 싶다. 아직도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하루가 참으로 길다. 몇 통의 전화로 무료한 몇 시간을 흘려 보낸다. 통화는 매번 비슷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영양가없고 잡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내겐 그렇게라도 대화할 상대가 남아 있으니 다행이다. 몇 통의 통화 끝에 전화가 왔다. 친구가 화를 낸다. 뭔 통화를 그렇게 오래하느냐고. 내가 할 게 그것 밖에 뭐가 있냐고 변명한다. 친구가 나오란다. 놀러 가잔다. 오늘은 그래도 외출할 일이 생겼다. 다행이다.


우리 엄마, 장여사를 관찰 중이다. 그녀의 하루는 몹시도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살피게 되었다. 그녀의 하루는 아마도 저렇지 않을까 추측 중이다. 일주일이 매번 그랬던 엄마는 그래서 지겨워보였었다. 인간은 모두 외롭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엄마는 평생 옆에서 다독이던 짝지를 잃은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적응 중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슬픈지 아는 딸이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고 싶었다. 너는 직장이라도 가고, 아직 젊지만 나는 늙은이라고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으며 의욕이 없다고 몸짓으로 소리친다. 그놈의 의욕이 문제일 거라고 지레짐작만 하던 딸은 그녀의 하루를 깊숙히 들여다 보았다. 요즘의 엄마는, 무너지고 있었다. 아빠를 보내고 급속히 늙어가는 중이다. 일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한 서너살은 더 먹은 것처럼 정신이 흐려지고 걸음걸이가 비뚫어졌다. 했던 이야기를 여러번 되풀이 하는 것도 걱정이다. 어깨는 움츠러 들었고 삶의 재미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아 해외 여행도 모시고 가 보았지만 그때 뿐이었다. 부쩍 초라해지는 엄마가 걱정 된다. 엄마를 보며, 인간에게 가장 아픈 독은 외로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 밖에 누구도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결국 이렇게 생각하는 딸은 그저 늙고 지쳐가는 노모를 지켜볼 뿐이다. 가슴 아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