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화가 피었다.
봄이 소리없이 발끝을 디민다. 시샘하는 하늘에서 무감없이 눈이 나린다. 펑펑 잘도 나린다. 사무실 앞마당에 쌓인 눈을 삽으로 밀어내며 끊임없이 궁시렁거린다. '나는 꽃샘추위가 젤 싫어.'
어제는 겨울이 끝났다고 생각해 봄옷을 꺼냈다. 드디어 따뜻한 햇살과 연두연두한 색으로 세상이 뒤덮을 날이 다가왔다고 그렇게 믿었다. 기지개를 펴며 봄 내음을 들이마실 기대에 부풀었다. 젠장, 떨어지는 눈송이가 나를 희롱한다.
봄이 오면 연두빛 잎이 세상을 싱그럽게 물들이고 하이얀 벚꽃이 지천으로 번진다. 아! 봄이 왔구나 느끼는 그런 날 부슬부슬 내리는 봄 비조차 어여쁘다. 꽃으로 시작하는 계절이라 더 반가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다양하고 화려한 꽃이 사무실에 가득하다. 행사 끝에 들어온 꽃과 꽂꽂이 강습후 예쁘게 장식한 꽃까지 더 들여 놓을 곳이 없어 일부는 집으로 가져오기까지 했다. 건조하던 사무실이 따뜻하고 화사하게 변했다. 향이 진한 장미도, 조그마한 꽃송이가 소담스럽게 붙은 이름 모를 꽃도, 인공적인 색상으로 변형된 꽃조차 조화롭게 뽐내는 사무실에서 잠시 밖의 눈은 잊고 행복하다. 들어오던 이들도 '우와!' 감탄사를 연발한다. 겨울 눈을 밀어내 길을 터둔 사무실 안은 꽃밭이다. 보는 이들의 작은 위로쯤은 된다고 생각하니 더 좋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향은 너무 독해지고 산소가 부족한지 숨이 짧고 어지럽다. 문득 예전 영화의 한 장면이 떠 올랐다. 밀폐된 방에 꽃을 가득 넣어두고 누워 질식사를 기다리던 모습을. 과유불급이라고 과해서 탈이다. 추워도 사무실 문을 열었다. 몇개의 꽃병은 복도로 옮긴다. 빈 공간이 생기니 다시 꽃에 눈이 간다. 적당히 춥지만 꾸며진 꽃을 보며 흐뭇해진다. 여백조차 조화롭다. 밖은 아직 겨울인데 사무실은 잠시간 봄이 머문다. 꽃은 역할을 다 하는 중이다.
업무에 집중하다가 꽃 한 번 보고 서류 한 번 보며 시간을 보낸다. 오후가 되니 소문도 없이 눈이 녹아내렸다. 이겨보려 몸부림치던 겨울의 잠식이 힘의 논리에서 밀려난다. 다시 봄이 기지개를 편다. 산에서 울어 대는 새의 노래가 평화롭다. 조금만 더 추위를 견디면 벚꽃은 번져 가고 개나리는 키를 키우겠지. 민둥가지의 새순이 올라와 나무도 연두빛 옷으로 치장을 할 것이다. 계속 기다리던 진짜 시작의 시간이 다가온다. 새해가 왔다며 기뻐하고 다짐을 만들던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진정한 일년의 시작은 사월이 아닐까? 봄이 자리잡는 완벽한 사월, 겨울과 치열하게 싸워 결국 쟁취할 승리의 계절.
봄이 온다.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