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즈음부터 남편이 이상하다.
까칠하게 짜증을 내는가 하면 하루종일 피곤하다며 대부분의 시간에 잠을 잔다.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식당에 가기 겁난다며 서너시는 되어야 점심식사를 한다고 하니 은근 걱정이다. 그래서라고만 생각했다. 소화가 안된다며 소화제를 자주 찾는다. 순하기만하던 남편이 까칠해지니 나는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주위의 얘기를 들어보니 남자 갱년기 같아 보인다. 여자들의 갱년기보다 더 힘들다고 하니 최대한 비위를 맞추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주 짜증을 부리는 남편이 은근 귀여워 그의 전화번호 이름을 '찡찡이'로 바꾸니 귀여움이 배가 되는 기분이다. 그의 갱년기는 내가 참아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런 마음이 든 내가 기특하기까지 했다.
남편과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자꾸만 누워 지내는 남편의 무기력이 싫어 오랜만에 어거지를 부렸다. 아이없이 둘이 떠나는 첫 여행이다. 가까운 경주는 우리 가족의 최애 여행지이다. 가까운 경주로 나가보기로 한다. 고학년이 된 아들의 공부 때문에 오래만에 나서는 길이다. 검색 후 맥문동 군락지가 있는 황성공원에 도착하니 한여름의 날씨는 찌는 듯하지만 꽃을 즐기는 관광객이 제법 눈에 띄인다. 폭염주의보라니 나무 그늘에서 천천히 걸으며 꽃을 즐기기에는 그만인 곳이다. 시큰둥하게 뒤를 따라오는 남편을 억지로 끌어 당겨 옆에서 걷게 한다. 보조를 마추어 손잡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발걸음이 빠른 남편을 끌어당겨 늦추는 일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가 자꾸만 뒷처진다. 걱정이 되어 자꾸 돌아보는 나에게 계속 가자며 손짓을 해 보인다. 내가 사진을 찍을 동안 금방 지치며 앉아서 기다리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서출지에서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모든 걸 맞춰 주기로 했으니 참고 혼자 한바퀴 돌다 기분이 나지않아 차로 돌아왔다. 그냥 집으로 가자고 하니 남편은 피곤한 몸으로도 내 생각을 하며 '네가 좋아하는 빙수는 먹고 가야 되지 않겠냐.'며 황리단길로 가자고 한다. 황리단길은 젊은이들의 길이다. 젊은 아이들이 바글바글하고 마침 비수기를 맞아 도로 공사가 한창이라 주차장도 찾기 힘들다. 코로나도 그렇고 나이도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다음에 먹자고 약속하고 돌아오는길, 우리의 참새방앗간인 황남빵가게로 갔다. 가격이 또 올랐다. 구두쇠 남편은 비싸다며 우리 먹을 것만 사겠단다. 이렇게 말하면 매번 나는 화를 냈었지. 올 때마다 시댁과 친정 그리고 우리집까지 3박스를 샀는데. 장난처럼 말하는 남편을 돌아보며 그러라고 쿨하게 대답했다. 가게에서 나오는 남편의 손에 3박스가 들려 있다. 그럴 줄 알았다. 이제 비싸서 마지막이라며 또 농담을 한다. 나는 "와~ 3박스 샀네."하며 웃어 주었다.
돌아오는 길, 남편은 '피곤하긴 한데 왔더니 속이 시원하고 잘 왔다 싶네.'라며 웃는다.
그날, 남편이 짓던 그 미소를 이제야 마음 속에 각인시킨다. 그날 우리 참 행복했는데. 이제 자주 오자고 약속도 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 할 약속이 되어버렸다.
그를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했어야 한다. 나의 무심함이 그를 너무 쉽게 놓치게 만든 것이 아닌지 후회된다. 그날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 오늘도 미안하다는 말만 자꾸 머리속을 맴돈다. 미안해하는 나에게 아들이 위로한다. 엄마는 할 도리 다 했다고 잘 하고 살았다고. 그런데 그건 위로를 전하는 말일 뿐이다. 후회가 방류된 물처럼 밀려든다. 나는 평생 후회하며 살 것 같다. 가슴에는 웃는 얼굴의 남편을 새겼고 머리에는 후회와 미안함이 새겨졌다.
이제 다시는 경주에 갈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남편이 혼자 사용하던 안방 화장실이 한 달째 닫혀 있는 것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