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려야 한다.
남편은 모든 것을 혼자 알아서 하던 사람이었다. 가끔 반신반의하는 결정사항이 있을 때만 의논을 해 왔다. 그것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내가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듣고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는 가질 수 있게 해 주던 남자다. 나는 신용카드 한 장 없이 남편 카드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다. 물론 결혼 전에는 지극히 독립적인 여성이었는데 가정 경제만은 고집이 너무 강한 남자를 만나 포기하고 살았다. 작년 가을 즈음, 어쩐 일로 신용카드 두 장을 만들어 주었다. 부탁을 받은 거라 일 년만 쓰고 없애자는 남편의 말에 거의 사용하지 않고 지갑에 넣어 두었다.
통장이 어느 은행에 있는지, 우리 집 재산은 얼마나 되고 현금은 어디에 들었는지, 최근 정리한 아파트의 거래 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하루 저녁에 사라진 내 남자 때문에 멘붕이 되었다. 남편의 통장 현금 카드는 있는데 비번을 모른다. usb는 찾았는데 번호를 모른다. 아무것도 확인할 수도 없었고 결제해 줘야 할 대금이 얼만지 어디로 넣어야 하는지 보험은 어느 회사에서 들어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앞이 캄캄했다. 최근에 산 자동차의 대금도 현금으로 남편이 가지고 있다가 결제일마다 금액을 내 통장에 넣어 주었었다. 당장 며칠 후면 결제일인데 어쩌지? 며칠 동안 그의 유품을 뒤지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결국 포기다.
주민센터에 가서 사망신고를 했다.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라는 안내를 받았다. 장례식과 납골당 등 굵직한 비용은 일단 내 신용카드로 결제를 마쳤다. 사망신고 이틀 만에 처리되었다며 주민센터에서 문자 안내가 왔다. 그 후로 각 금융사에서 남편 앞으로 있는 통장, 카드, 잔고, 카드대금 등의 내역이 문자로 날아왔다. 며칠에 걸쳐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잔고가 없다는 연락을 받는 날은 암흑처럼 답답했다. 있어야 할 잔고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사망 처리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그 날부터 통장이 잠겨 결제가 정지되었다며 카드사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으니 남편 앞으로 가상계좌를 열어 줄 테니 당일 중으로 입금해 주십사하는 안내를 받았다. 발 빠른 카드사의 행보에 놀랐다. 입금하고 돌아서면 또 다른 곳에서 연락이 오고 가상계좌가 열리고 입금을 하고 며칠 동안 정신없이 은행 확인과 결재 대금확인 등 금융권 정리가 이루어졌다. 찾아가라는 돈은 없고 결제 해 달라는 돈은 자꾸 나온다. 답답하고 걱정되었지만 모두 생활비로 쓴 돈이니 어쩌겠는가? 성질 급한 나는 빨리 정리하고 남는 돈이 얼만지 한 달에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계획이 나올 것 같았지만 정리는 쉽지가 않았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하나를 발견하면 그것에 연결된 수십 개가 나온다. 머리가 아프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이 "형부 진짜 천잰데." 한다. 남편은 자주 내게 자랑처럼 자신은 머리 좋은 남자라고 말했었다. 기억력이 비상해 수백 군데의 거래처 전화번호를 머릿속에 저장하는 남자다. 그래도 본인에게는 한 번도 머리 좋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제야 인정. 그 많은 통장과 결제 건을 보며 일일이 날짜 맞추어 통장별로 정리하고 세금도 날짜별로 현금 결재했다. 회사에서도 수많은 거래처를 관리하고 법무팀장으로 법원까지 들락거렸으니 머릿속에 든 정보의 양이 엄청났을 것이다. 그 와중에 본가와 동생의 경제까지 관리한 그 사람은 머리가 좋지 않았다면 필시 큰 사고를 쳤을 것이다. 기억력이 비상했던 남편 덕에 나는 대부분 건성으로 살았다.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은 남편에게 물으면 다 알려 줬었지. 날짜와 시간까지 기억해 알려줬던 사람이다. 이제 나는 많은 것을 놓칠지도 모른다. 기억력 나쁜 나는 예전에는 메모하는 습관이 발달했었다. 이제 다시 나는 메모에 치여 살게 되었다.
남편을 보내고 슬퍼할 시간도 없이 뒷정리에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아이도 무탈하게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대학 입학도 시켜야 한다. 나는 아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데 겁이 난다. 자꾸만 힘이 빠진다. 남편이 없는 주말, 관공서 일도 처리할 수 없는 그래서 온전히 쉴 수 있는 주말, 나는 그가 한없이 보고 싶다. 어리광부리며 나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소리치고 싶다. 그가 없는 주말, 허전하고 외로워서 더 힘들다. 마음은 수십 번도 더 납골당으로 향한다. 가서 그의 앞에 앉아 넋두리라도 하다가 오면 속이 좀 시원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