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by 완뚜

그를 보낸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주변도 조금씩 안정이 되어 간다. 온종일 울리던 지인의 안부 전화도 뜸해졌고, 갑자기 돌변해 효자 노릇하던 아들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철든 척 할 때는 그것이 못마땅하더니 예전의 모습을 보일 때는 또 남편이 생각나며 속이 상하다. 이렇게 하는 것도 저렇게 하는 것도 다 못마땅하다.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다 못마땅한게다. 하늘이 사라졌는데 어찌 만족이 되겠는가? 매일 보며 감동하던 베란다 밖 풍경 속 하늘도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아니 눈에 들지 않는다. 이제 하늘을 올려다 보며 감동하던 철 없던 아줌마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모두 사라진 그곳에 현실 걱정으로 잠 못드는 중년의 아줌마만 남았다.

칠남매의 덕을 이번처럼 온전히 받은 적이 또 있었던가? 자라는 동안 거추장스럽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었건만, 이번만은 그들의 존재가 고마웠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준비도 안 되어 있었던 큰 일에 나 혼자 처리한다는 것이 가능이나 했을까?


시댁 식구들은 의심이 많다. 보험이나 상조에 가입하는 것이 꼭 돈을 뜯기는 양 의심을 했다. 몇 번인가 권유해 보다 결국 포기했었다. 남편도 마찮가지다. 그나마 잔병치레 많은 아들과 큰 수술 몇 번 받았던 아내를 위해 보험은 들어 두었다. 본인은 감기도 잘 하지 않는 건강한 몸이라서 그랬는지 최소한의 병원비 관련 실손만 준비되어 있었다. 양가 어른들이 모두 생존해 계시니 미리 묘자리를 마련해 둔 것도 아니다. 준비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토요일 아침에 응급실 도착, 일요일 새벽 5시 사망 선고 후 빠르게 장례식 준비가 시작되었다. 사실 남편은 카톨릭 신자가 아니다. 친정이 모두 신자이다 보니 급하게 응급실에서 언니에게 대세(카톨릭에서는 위급할 때 신자가 대리해서 세례를 주기도 한다)를 받았다. 언니는 내가 다니던 성당으로 연락을 하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자매님과 준비를 시작했다. 상조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언니가 넣어 두었던 상조를 이용했다. 모든 것은 자매들이 나서서 준비했다. 서울에서 달려 온 동생들도 합류했다. 나는 덕분에 이거 할래? 저거 할래? 정도의 선택만 하면 되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 친구들 조차 오픈하지 않았던 남편의 전화를 들여다 보니 거래처가 너무 많다. 누구에게 연락할 지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전체 문자를 보냈다. 이런 것 조차 제부들이 나서서 다 처리해 주었다. 최근 대학을 졸업한 조카 두명도 삼일 내내 장례식장을 지켰다. 내가 과하게 울거나 정신을 놓을 것 같아 보이면 어느새 다가와 어깨를 안아 주고 다독여 주는 것도 조카의 몫이었다. 이런 아이들이라 그렇게 사랑했었나 보다. 남편이 이 조카들을 너무나 사랑했었다. 남편의 전화에는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던 조카들과 간간히 딸처럼 키우던 8살 조카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고3이라 공부가 바빴던 조카까지 내려와 그의 앞에서 통곡 했다. 고맙고 미안했다.
전국에서 선후배들이 찾아왔다. 빈소에 절을 하며 눈물 흘리고, 절을 하다 차마 일어서지 못하고 울고 있는 그의 선후배들을 보며 그는 참 사랑 받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결국 아내라는 이름의 나만 그에게 함부로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만 그에게 나쁜 사람이었을까?

모든 사람이 다녀 갔다. 전국에서 모인 선후배, 동기, 회사 전직원, 그리고 본가와 처가 식구들에 조카들까지. 단 한 사람, 최근 그의 가장 큰 마음의 짐이었던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만 오시지 못 했다. 알릴 수 없다는 삼촌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긴 했지만 마음이 좋지는 않다. 속이 상했다. 남편은 표현이 약한 행동파 효자였다. 그런 그의 마음 속에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던 어머니의 배웅을 끝내 받지 못하고 떠났다.

괜찮다. 그는 이미 너무나 사랑을 받는 이였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자리를 지키고 기도를 해 주셨다. 코로나 때문에 빈소가 썰렁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복잡한 빈소에 기도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행복하게 보내고 싶었다. 비록 아까운 나이에 아까운 사람을 보내는 것이지만 이왕 보내는 길에 꽃상여는 아니더라도 사랑받는다는 걸 알고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나는 정신을 차리려 한다. 그가 맡겨 놓고 간 아들을 열심히 키우고 당당하게 그를 만나야지. 이미 그의 옆자리도 예약해 두었으니 조금만 쓸쓸하게 지내고 있으면 내가 열심히 살다가 곱게 옆으로 갈께.

"여보,

여보라고 한 번도 불러주지 못했던 내 남편,
나 잘 할께. 씩씩하게 견디어 볼께.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 나의 황금 같았던 시간들, 모두 고마워. 사랑해. 많이 많이 사랑해.

가슴이 터질 것처럼 사랑해.
○○ 씨, 고마웠어.
감사했습니다. 나와 살아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