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쯤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남편이 처음으로 조퇴를 하고 집에 왔다. 아침에 소화가 잘 안된다더니 탈이 났나보다. 집에 오면서 소화제를 사들고 왔길래 먹고 한숨 자라고 침대를 정리해 줬다. 밤새 앓는 소리가 나서 걱정이 된 나는그의 옆을 지켰다. 힘들어 하는데 병원가자니 아침에 가겠다고 한다. 힘들면 119 부르자고 하니 코로나 때문에 구급차가 아파트 들어 오면 소란스러워서 안 된단다. 배가 빵빵히 불러 있어 깜짝 놀라며 점심에 뭘 먹었냐며 퉁박을 주었다. 남편은 식탐이 많은 편이고 맛집 탐방을 좋아한다. 진짜 맛있는 식당을 발견하면 꼭 전화를 해 다음에 같이 가서 먹자며 나를 생각해 주던 남자다. 밤새 앓는 남편 옆에서 걱정만 하며 날을 샜다. 새벽부터 병원행 준비를 했다. 안가겠다고 버티는 남편을 화를 내며 일으키는데 일어나지를 못한다. 아뿔사!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 억지로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기는데 발이 퉁퉁 부었다. 양말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겨우 차에 태우고 큰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도 남편은 동네병원에 가자고 해서 한번 더 다투었다.
8시 응급실 도착.
앞에는 코로나 간이 검사장이 있고 열이 있는 남편은 밖의 간이 의자에서 대기. 나는 접수를 하고 있었다. 낯선 아주머니가 급하게 쫓아와 남편이 쓰러졌다고 한다. 돌아서니 남편은 침대에 누워 있고 남편 위에 의사가 올라 타고 심폐소생 중이다. 헉. 숨이 멈춘다. 시간이 멈춘다. 미친듯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심폐소생술 중인 남편을 두고 응급실 접수를 마무리 했다. 너무한다. 이순간만은 빨리 접수하라는 응급실 관계자들이 원망스럽다. 다급한 순간에 나는 서류 나부랭이를 붙들고 병원 접수를 하느라 남편 옆에 있을 수도 없었다.
8시5분 심정지 CPR 5-10분 심장만 돌아왔다. 의사는 일단 심정지가 길지 않아 다행이란다. 다행이다. 곧 정신도 들고 며칠 아니면 몇달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하겠지. 통화한 지 15분 만에 동생이 도착했다. 병원 응급의학과 과장인 동생은 다행히 이 병원에도 선배가 당직 과장이어서 상황을 듣고 챠트를 봤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전문 용어들이 응급 담당의와 동생 사이의 대화 속에 오고 간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담당의사가 호흡기 내과에서 내과로 다시 호흡기 내과로 바뀌었다. 계속 원인을 찾고 있다. 양쪽 폐의 폐렴, 위장이 상했고 간경화가 심하고 복수가 찼고..., 알수 없는 곳에서의 장내 출혈이 심하다. 계속된 알아 들을 수 없는 병명들. 소화장애가 심해 들른 응급실의 의사가 하는 말은 외계어였다. 어이가 없다. 청천벽력. 조곤조곤 남동생이 상황을 설명한다. 아들을 부르란다. 부모님도 연락하라고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며 먼저 눈물을 보인다. 오늘을 버티기 힘들거라는데 '무슨 말을 하는거지?뭔가 잘못 되었다. 소화불량으로 데려왔는데, 주사 한 대 맞고 집에 갈건데.' 거짓말 같기만 하다. 눈이 퉁퉁 부었다. 목이 쉬었다. 응급실 대기실의 사람들이 힐끔 거린다. 아들이 왔다. 울며 왔는지 저도 눈이 빨갛다. 오면서 이모에게 들은 모양이다. 우리 둘은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실감할 수 없고 이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현실이 아닌 것만 같다.
아버님이 오시고 도련님이 오고 친정엄마와 언니 동생들이 왔다. 중환자실에 올라가면 볼 수 없으니 다들 부랴부랴 달려왔다. 응급실은 보호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지만 모두 눈을 감아준다. 마지막 인사하러 들른 가족들을 위해 작은 규칙은 외면해 준다. 인사를 마친 남편은 중환자실로 올려졌다. 중환자실 앞 대기실은 우리가족의 차지이다. 중환자실은 낮시간 한차례만 면회가 되니 다른 환자 가족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담당의가 돌아가지 말고 대기해 달라는 말에 한번 더 무너지며 밤을 견디고 있다. 새벽 1시 심폐소생술 포기 사인. 매 순간이 고통이다.
결국 마지막은 오고야 말았다. 우리를 든든히 지켜주던 따뜻하고 예뻤던 하늘이 무너졌다. 싸늘한 체온만 내 손끝에 남긴 채 가 버렸다. 사과할 시간도, 사랑을 돌려 줄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못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찰나처럼 사라졌다. 결혼 전 '공주처럼 살게 해 줄께.' 하던 약속을 착실히 지키던 나의 하늘은 그렇게 가 버렸다.
미안해. 미안해. 철 없어서 미안해. 당신의 사랑을 깨닫지 못해서 미안해. 모두 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