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했다.
이제 혼자 우리 집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경단녀 18년 인생은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간단한 아르바이트 개념의 일들은 있었지만 그건 정말로 푼돈이었고 아들과 다니는 여행 경비로 지출되는 정도였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거액의 빚은 남기지 않았지만, 아직은 지출이 많은 아들만 남겨 두고 떠났다. 답답했다. 어디서부터 찾아서 매듭을 풀어야 할지. 이것저것 취미로 해 온 것은 많지만 자격증 하나 따 두지 않았다. 남편은 평생 직장생활 안 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었고 착실히 지키고 있었다. 자신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테니 원망은 하지 않는다. 그동안 나에게 최선을 다해 주었으니 그저 감사하다. 이제 내가 찾아야 할 길이 막막할 뿐이다.
아는 분이 여성 일자리센터에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남편을 보낸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일단 급한 마음에 연락을 해봤다. 천천히 여건 맞추어 연락해 주겠지 싶었다. 통화한 그 날 오후에 연락이 왔다. 특강이 내일부터 있는데 인원이 부족하다고 머릿수를 채워 달라고 한다. 내가 남편 보내고 온 지 아직 10일도 되지 않았다고 했더니 괜찮단다. 뭐가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거절할 수도 없었다.
남편 위령 미사와 겹치는 시간대를 바쁘게 오가며 삼일의 특강을 들었다. 눈은 퉁퉁 부어서 마스크 끼고 강의실에 들어가면 낯선 사람들이 앉아 있다.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짐짓 태연한 척 급하지 않은 척 그렇게 앉아서 강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20년의 차이는 엄청났다. 사실 나는 첫 직장도 지인의 소개로 들어갔다. 꽤 규모 있는 무역회사였다. 처음에는 내 실력이 못 미더워 고졸 기준의 급여가 책정되었고 지내보고 올려주겠다고 했다. 물론 일 년 만에 꽤 대우받는 직원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직장생활은 매번 함께 일해 본 상사의 러브콜을 받고 다음 직장으로 옮겼으니 이력서도 대충 써서 냈었다.
이번 특강에서는 이력서와 자소서 쓰는 법도 알려 주는데 처음이었다. 이렇게 까다롭게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 이력서를 쓰려니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아주 옛날 자격증도 이미 의미를 잃었다. 쓸 것이 없다. 강사도 나에게 당장 취직보다는 자격증 취득부터 권한다.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보더니 할 줄 아는 건 많은데 검증될 자격증이 없다면서 실전 경험이 있으니 쉽게 딸 수 있을 거 같다고 도전해 보란다. 나는 하루라도 급한 마음을 눌렀다. 아직 방향성도 못 잡았고 고민만 쌓였다. 취업 사이트를 살펴보았다. 구인은 있는데 내 나이가 너무 많다. 새로운 사무시스템이 생소하다. 답답하고 체기가 올라온다. 어쩌나?
조금만 성급함을 내려놓고 심사숙고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시간을 두고 정보도 수집해야겠다.경단녀에 나이까지 많으니 정말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참 세상 무심하게 살았구나, 뒤늦게 후회한다. 정리가 좀 되면 과연 도전할 수는 있을까? 너무나 두렵다. 나를 치료해 줄 의사 선생님이 필요하다. 심폐소생이든 재활프로그램이든 제발 뭐든지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언론에서 자주 듣던 경단녀의 비애가 내 차지가 될 줄이야.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내가 이리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