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을 구직 사이트 양식에 맞춰 이력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20년의 경단녀는 시간만 지난 게 아니었다. 연도도 일어났던 일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과거의 기록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기억을 더듬고 비슷한 자료를 찾아보고 검색해 보고 겨우 기억의 조각을 찾아내 이력서를 작성했다. 심지어 다녔던 회사 이름도 기억에서 사라졌다. 남편이 있었다면 금방 날짜까지 알려 줬을 텐데. 사실 기억력 좋은 남편 덕분에 무언가를 나의 뇌 속에 저장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랬었는데, 이제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서 쥐어짜 낸 자료를 입력하고 있다. 하등 쓸모없는 경력과 자격을 입력하며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다.
작성이 끝나니 내 경력에 맞는 몇 군데를 추천해 준다. 하지만 나이가 맞지 않거나 요즘 업무에 맞는 자격을 요구한다. 너무 오래전 수기로 작성하던 장부는 이제 전산 세무라는 다른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하기야 강산이 두 번 바뀌었으니 이제 경력직도 아니고, 나이를 보니 신입도 불가능하고 이력서 보낼 곳 찾기도 어렵다. 차라리 생산직으로 갈까? 그것도 안 해 본 일이라 덜컥 겁이 난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 고민하다 재취업 특강 때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고용안정센터와 연계한 무료 재취업 교육을 듣고 자격증을 갖추라고 했던. 시간이 걸려도 조금 둘러 가더라도 해 보자 싶었다. 인터넷을 뒤져 비교적 집과 가까우면서 내게 필요한 직업 교육을 찾았다. 마침 다음 달부터 수업 시작이다. 지원받으며 수업하려면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몰라 인터넷으로 수강 신청을 해 두고 상담 전화를 신청해 두었다.
몇 시간 후, 상담 전화는 무척 친절했다. 단지 교육과정이 2~30대가 대부분인데 따라갈 수 있겠느냐며 포기를 종용하는 느낌이다. 뭐 이런 경우가 있지? 분명 사이트에서 꼼꼼히 읽었고 나이 상관없다는 문구도 봤건만 울컥 화가 치민다. 할 수 있다고 컴퓨터 좀 만져 본 여자라고 어필했다. 직접 내방 해서 상담하고 자격 요건이 되는지 확인하겠단다. 이건 뭐 무시당하는 느낌이다. 나름 도서관에서 크고 작은 프로젝트도 진행했었다. 여러 군데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도 받았었다. 단지 생활비에 미치지 못해 이제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지만. 나는 기계에 강한 편이다. 잘 고치고 잘 이해하고 잘 만진다. 컴퓨터도 여러 다양한 프로그램을 독학으로 섭렵했다. 편집프로그램도 기초만 배우고 나머지는 독학으로 공부해 영화제 등 상도 받았다. 그러나 낯선 사람들에게 나는 컴퓨터도 모르는 평범한 그냥 아줌마다. 동네에 흔한 아줌마. 오기가 생겼다. 꼭 상담에서 이기리라.
아! 그런데 안되면 어쩌지? 혹시 다 배운 후에도 나이가 걸림돌이 되려나? 용기와 자신감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도 있구나. 자꾸 움츠러드는 자신감을 다시 세운다. 살아야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