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형제의 장남.
그래서 그 어깨에 올려진 무게가 만만치 않은 남자, 그것이 내 남편이다. 그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뼛속까지 효자였다. 누구도 모르게 과묵하고 묵묵히 가족을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있는 일에는 능력보다 과하게 움직였고 걱정도 남들보다 많았던 남자다. 나에게 아낌없이 해 주었던 남자, 그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가 없었다. 그의 삶에서 늙어 힘 빠진 부모님이 아픈 손가락이었다는 걸 나는 애써 외면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상황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을까하여 철저히 분리하고, 그 중간에서 자신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 우리는 그에게 받는 혜택만 받아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는 어려웠고 우리는 참 쉬운 인생이었다.
시어머님에게는 막내아들이 아픈 손가락이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분이시다. 결혼 초에는 어머님의 간섭에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그 관심의 대상이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막내아들에게 넘어간 것은 나에게 신의 한 수였다. 남편도 이 기회를 이용했고 우리 가정은 평화가 찾아 왔다. 그래서였을까? 수년이 지났음에도 나는 시댁의 일에는 깜깜이였다. 혼자 알아서 잘 하는 남자가 내 남자여서 믿었다. 그것이 그의 큰 십자가였음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외면했다. 이기적인 아내는 그의 짐을 기꺼이 나누지 않았다.
어머님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작년, 어머님이 양쪽 다리 모두에 관절 수술을 받았다. 그즈음 찾아온 치매도 한 몫 했겠지만, 거금을 들인 수술과 재활 치료는 의미가 없게 되었다. 본인에게 재활 의지가 없어 치료는 쉽지 않았고, 오랜 기간 재활 병원에서 지냈지만 결국 걷기에 실패했다. 재활 포기, 그동안 결혼하지 않은 막내와 살고 있던 어머님은 다시 막내 집으로 돌아갔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밥이라도 해 주겠다며 시아버지를 버리고 혼자 들어간 것이 수년이었고 이제 병들고 지친 몸이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나는 남편에게 양쪽 집을 정리해 아버님, 어머님 모두 모시고 살면 어떻겠냐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남편은 단칼에 거절이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나의 의견에 고마워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고생도 그냥 보고 있기는 싫었을 것이다.
딴 집 살림이 시작되었다.
친가와 동생 집까지 세 군데 집의 살림이 시작된 것이다. 낮에 업무를 보다가 틈틈이 시댁과 막내 도련님 집에 반찬을 사다 드리고 과일과 고기 등 먹거리를 사다 드렸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었는데 한 번도 내게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가끔 장을 봐 반찬을 만들어 보냈다. 그렇게 많은 양의 반찬을 만들어 보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건 내 마음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한 얄팍한 행동이었다. 남편이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져 내가 하는 최소한의 예의 정도였다. 그런데도 남편은 무척 고마워했다. 그게 또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당당하게 요구하지도 못하는 남자가 내 남자였다.
최근에는 아버님 댁에 냉장고가 고장 났다고 하며 빨리 알아보고 사 드려야겠다고 했다. 남편은 물건 구입시 유독 오래 걸리는 남자다. 심사숙고하고도 더 싼 곳이 있을까 봐 불안해 좀 더 알아봐야 하는 성격이었다. 겨울 전에 아버님 오리털 파카도 좋은 걸 사 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모든 것이 안타까웠고 해 드리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그는 그중 급한 것 몇 가지만 나와 상의했을 것이다. 우리는 약속을 했다. 주말에 시간 내서 모시고 가자고. 시댁 남자들은 안 하면 안 했지, 할 때는 하나라도 비싸고 좋은 것을 사는 사람들이다. 은근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조금 덜 쓰면 된다고 생각하며 다 사 드리자고 했다. 이럴 때 남편은 무척 고마워한다. 자신이 번 돈으로 하는 일인데도 내게 고맙다니 나는 조금 민망하다. 남편은 쉽게 허락하는 내 성격 때문에 매번 나를 못 먹어도 Go지, 하고 놀렸던 거다. 간간이 저렴하고 적당한 물건을 내가 알아보면 남편이 검증했고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가고 있었다. 결정이 더딘 남자니 이제 익숙해져 나도 무심해졌다. 그렇게 냉장고도 알아보고 아버님 파카도 알아보는 와중에 치매에 다리까지 안 좋은 어머님의 뒷 처리도 알아보고 있었다. 거기다 동생의 집 문제까지 해결하는 중이었으니 그의 어깨는 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내려지지도 않는 무거운 짐들이.
장례식이 끝났다.
뒷정리 서류도 얼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집에 있던 아들이 며칠 전부터 학교에 갔다. 혼자의 시간이 생기고 며칠 슬퍼하고 나니 문득 그의 십자가가 생각났다. 어머님은 혼자 빈 집에 계시는 걸까? 도련님께 전화를 걸었다. 혹시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고 보내면 어떻겠냐고. 남편이 알아보던 중이었다는 얘기도 했다. 그리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행히 집 근처에 형부와 절친이 주간보호센터 원장님이셔서 부탁을 드렸다. 일주일 내내 직접 휠체어 가져와 모시고 가고 목욕도 시켜 드리고 병원도 모시고 간단다. 도련님은 너무 좋아했다.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이라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연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도 며느리라 어머님 자식인데 그렇게 감사할 일인가 싶다. 내가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하나는 해결.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은 이제 내 여력이 안 되니 패스.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요기까지가 나의 최선이다.
미안해!
당신 아픈 손가락에 연고라도 발라 주고 싶었는데 내가 구할 수 있는 연고는 이게 모두네. 그래도 조금은 마음의 짐이 내려졌지? 책임감 있는 남잔데 남겨 둔 게 많아 거기서도 걱정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니지? 다 내려놓고 우리를 믿고 지켜봐 줘. 최선을 다해 볼 게. 오늘도 여전히 아니 더 많이 보고 싶네. 잘 있지? 내가 갈 때까지 여기는 다 잊어버리고 딱 기다려. 나는 잊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