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짓말

by 완뚜

주위가 온통 조용하다.
그가 없어진 집은 적막하다. 평일 낮은 여유롭다. 종일 걸려 오던 남편의 전화가 끊어졌고, 나에게는 시간의 여유가 찾아 왔다. 이 여유 시간이 낯설다. 무슨 일을 시작해도 금방 끝나 버린다. 다른 일을 찾아 두리번거리지만 쉽지 않다. 휴대폰을 연다. 남편의 연락은 여전히 없다. 전화번호의 연락처에 넣어 둔 사진을 본다. 사진 속 미소가 얄밉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며 그가 나를 참 많이 아꼈다고 남들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필시 좋은 곳에서 편안할 것이라고 덕담도 늘어놓았다. 그랬는데 요즘 나는 그가 밉다. 혼자 떠나 버린 그가 밉다. 어떻게 모든 짐을 내게 던져두고 가버린단 말인가? 그렇게 아꼈다면 이럴 수는 없다. 보고 싶어서 시작된 눈물 끝에 원망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그래도 내일은 다시 사람들에게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하겠지. 또 다른 거짓말을 늘어놓겠지. 이제 괜찮다고. 넉살을 부리며 웃다가 돌아서며 허무해지겠지. 나는 괜찮다는 최면을 걸며 내일도 또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겠지.

남편이 사라졌다.
가정 경제를 책임져 주던 남편이 사라졌다. 아이 교육을 책임지고 내가 필요한 것도 아낌없이 보조해 주던 가장이 사라졌다. 친인척들이 걱정하며 묻는 말에 괜찮다고 버틸 수 있다고 그 정도는 그가 열심히 살았기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 나는 뒤 늦게 우리 집 생활비를 체크 중이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에 나는 나의 바보스러움에 헛웃음이 났다. 단편적으로 예감했던 우리 집 생활비는 사실 태산만큼 거대했다. 고정적으로 매달 나가는 보험료, 통신비, 대출 상환금, 각종 세금, 교육비는 예상을 넘어섰다. 나는 얼마나 무심했었나?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는 금액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알아서 해 주는 멋진 남편이 있고 그는 영원히 내 옆에 있을 거라고.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잘해 주지나 말지.
그가 너무도 원망스럽다. 나를 바보로 만들어 놓았다. 그의 앞으로 있던 아파트를 나와 아이 앞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대출금 이자 날짜가 지났는데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지? 주택공사는 왜 또 이리 통화가 힘든지? 하루를 넘기는 시간이 시험이고 인내였다. 가방 안 가득 남편의 사망신고서부터 각종 증명서까지 넣어 다닌다. 무슨 서류가 필요할지 모르는 나의 궁여지책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내 어깨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느라 고생 중이다.

그가 원망스럽다.
내가 좋아한다며 열심히 사다 주었던 수제 도너츠도 황금붕어빵도 이제는 상상만 해도 속이 좋지 않다. 먹고 싶다는 생각은커녕 이름만 들어도 명치 끝이 답답해지며 소화불량 상태가 된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사다 주던 설탕. 소금, 간장 같은 것들도 부엌에서 마주할 때마다 그가 생각났다. 우리 집에 있는 모든 것이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온종일 그의 생각이 날 수밖에.


거짓말을 한다.
밖에 나가 이제 괜찮다고, 그는 좋은 곳에 갔을 테니 나와 아들 걱정만 하면 된다고, 나는 잘 살 자신이 있다고 그렇게 괴변을 늘여 놓는다. 온통 거짓말이다. 자신감이 충만한 척, 용감한 척이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두렵다. 종일 검색했던 구직 사이트를 다시 열었다. 나이가 많아서 안 되고 자격증이 없어서 안 되고 시간이 맞지 않아 안 되고 여자라서 안 되는 수 많은 이유로 좌절한다. 이중적인 나는 오늘도 혼자 땅굴을 파고 들어가 괴로워한다.

간절하니 신을 찾게 된다.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 중에 눈물이 멈추지 않아 애를 먹었다. 기도 끝나면 미사도 다녀와야 하는데 눈 빨간 신경 쓰이는 여자로 등장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다. 오늘 미사에는 고개를 숙이고 되도록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아야겠다. 계속 괜찮다고 했던 내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도록.

친한 사람을 만나면 웃고 떠든다.
내가 이래도 되나 싶다. 농담과 웃음 속에 따라오는 허무함은 아무도 모르겠지. 웃고 떠드는 것도 눈치 보이게 만든 그를 원망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서, 미치도록 그리워서 미워지지 않는다. 그를 못 본 지 한 달하고도 10일이 지났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본 적이 있었나? 없다. 아들과 둘이 유럽여행을 다녀올 때도 길어야 보름이었다. 곱절도 넘는 시간 동안 이별을 하고 있다. 아직 가슴의 상처는 아물지 않아 서늘한 고통을 선사하는데 내 눈물을 가장 싫어했던 한 남자는 눈물의 원인이 되었다. 그는 알고 있을까? 내 눈물의 대부분이 그의 책임이라는 것을, 그는 그것을 보상해 줄 수나 있을까? 18년의 세월 동안 정성 들여 사랑을 쏟아 부었으면서 왜 이렇게 가버렸을까? 나에게 이보다 가혹한 처사는 다시 없을 것이다. 원망해야 할 그였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가슴 시리다. 원망이 시작되면 좋겠는데 사랑과 그리움만이 자꾸 몸집을 키우니 나는 점점 더 슬프다.


오늘도 나는 밖에 나가 점점 괜찮아지고 있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