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슬픈데 너도 슬프구나

by 완뚜

남편의 장례 미사 때 비보를 접했다. 그때는 내 정신이 아니었으니 잊고 있었다.

인근에 우리가 자주 다니던 치킨 가게가 있다. 사장님 부부는 가까운 성당에서 활동도 많이 하고 사업도 크게 하시다가 잘못되어 이곳에서 치킨 가게를 시작했다는데 친절해서 성당 분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나도 성당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골이 되고 그렇게 친분을 쌓았다. 늦게까지 시간의 제약 없이 치맥을 마시며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자 사장님이 나와 동갑이니 우리 부부와 연배가 비슷하다. 그런데 나의 하늘이 무너졌던 그 날에서 이틀 뒤 그 집 사장님도 돌아가셨단다. 병명이 남편과 똑같았다. 두 달 전 프리미엄급 건강검진도 받았고 건강이 아주 좋다는 진단도 받았었다는데 이틀 만에 세상을 달리했다고 하니 그녀도 나도 청천벽력을 겪은 셈이다. 이쯤 되니 함께 어울리며 그곳에 아지트를 틀었던 지인들의 입에 우리 집과 그 집이 회자 될 수밖에 없다.

장례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치킨 가게 사장님이 나를 한 보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고 전해 왔다.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되니 한 번 만나 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사업을 크게 하다가 잘못되어서 빚이 수십억이라는 풍문도 있었다. 그나마 내 남자에게 고맙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둘이 만나 어쩌겠는가? 슬픔의 시너지로 서로 누가 더 슬픈지 내기라도 할 것인가. 가슴 답답해지고 슬퍼 질 것이 자명해 보였다. 같은 심정이니 누구보다 마음의 위로가 되면서도 서로를 보면 슬픔이 더 북받칠 것 같았다.

그래서였다. 차일피일 미루고 조금만 더 마음을 추스르고 웃을 수 있을 때, 가볍게 찾아가 치맥 한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잘 정리하고 있으리라 믿으며.

시간이 늦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침 미사에 다녀오는 길에 연락을 받았다. 그녀가 치킨 가게를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소식을 전해 주던 친한 언니는 내가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 치킨집 인수할 생각이 있냐며.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 밤늦게까지 술손님이 많은 곳이었다. 내가 망설이자 자본금이 부족한 모양이라고 느꼈는지 도와주겠다고 투자도 해 주겠다고 한다. 퇴근 후 아르바이트도 해 줄게, 라며 고마운 말까지 한다. 나 진짜 잘 살았나 보다. 고마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 키우는 사람이라 될 수 있으면 술장사는 하고 싶지 않다고 특히 혼자되고 보니 더욱 조심스럽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일에 경중이 있겠느냐마는 내 마음은 그랬다.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내 코가 석 자나 나와 있건만 치킨 가게 그녀의 코 석 자도 걱정이다. 어떻게 정리하느라 주 수입원인 가게까지 정리하는지 걱정되기만 했다. 방법이 없으니 조용히 그녀를 위해 기도라도 해야겠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는데 사실 같은 슬픔을 가진 사람이 나누면 슬픔은 절대 줄어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쉽게 만나지 못했다. 그녀도 내 사정을 짐작하리라 믿으며 마음으로만 응원을 보낸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슬퍼하는 것만으로도 과하게 힘든 일이다. 그런데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까지 맡겨지면 그때는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까지 더해져 슬픔도 커진다. 막연한 미래와 책임져야 할 자녀와 집안 대소사까지 모두 내 책임이 된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을 당하면 마치 내가 큰 잘못을 해서 벌을 받고 있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 이성적으로는 피치 못할 우연한 상황이라 생각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자꾸 나를 꾸짖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잘못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십자가의 무게가 곱절은 무거워졌으니, 그렇게 된 이유를 찾으려 고민하다 보면 이유 없는 자학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녀도 그럴까? 나는 그래서 더 아프다. 내 자학의 한 자락에 남편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지니 숨쉬기도 어려울 만큼 고통스럽다. 수십년 간 알아 왔고 아프다고 생각했던 다양한 종류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만큼 인간이 느끼는 슬픔 중 최고의 것이 없음을 이제는 안다. 지금 나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슬픔 중 하나를 경험하는 중이다. 이것이 고통스러운 슬픔에 대한 마지막 경험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