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을 펼쳤다.
도서관에서 책 몇 권을 빌려 왔다. 집중도는 떨어지지만 애써 책에 시선을 둔다. '이 터널 같은 시간만 지나가면 괜찮아지려나?'라고 책이 나를 향해 대화를 시도한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처음 몇 장에서 문구가 내게 말을 걸어오면 그 책은 지루해도 끝까지 읽어 나가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서이다. 책은 내게 가끔은 위로이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좌절감으로 괴로운 나에게 책이 나도 너와 같다며 말을 걸어 준다. 오늘은 제목이 내 마음 같아 보여서 고른 책이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를 때가 있잖아요》제목만 보면 딱 내 이야기다. 사실 내용은 꿈에 관한 이야기다. 연관성은 없지만 괜찮다. 이제까지의 책은 말을 걸기 시작하면 결국 끝에서도 내가 원한 말로 끝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상황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기하게 내가 필요한 말만 속속 뽑아 먹는 중이다.
책의 한 구절이다.
'가장 불만족하게 살고 있는 때가 언제인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이라고 답할 것이다.' 공감되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현재는 언제나 불만스러웠다. 그리고 오늘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의 터널을 지나가는 긴 시간의 어느 하루이다.
평생이 그랬다.
현재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욕심껏 되지 않아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카르페 디엠)라는 말을 좋아했다. 그러나 한 달 전부터 나는 카르페 디엠이 끔찍하다.
시간이란 이상한 현상이다.
나는 현재에 불만을 두고 만족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남편이 나의 현재였을 때조차 불만의 타깃이 되었다. 현재의 나는 채워지지 않는 무엇을 끊임없이 욕망하며 살았다. 이제는 과거가 되어 버린 남편을 생각하며 그때가 가장 행복했구나, 하는 자책한다. 과거는 언제나 아름답고 화려하게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신기한 일이다. 똑같은 일이 내 안에서 현재일 때와 과거일 때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과거만 바라보고 사는 여자인가? 매번 미래는 막연하고 두려웠다. 지금의 상황이 미래의 나를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런데 과거만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스스로 미화시킨다. 생각해 보면 그때 참 좋았는데 라거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거나 어설픈 결정에도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합리화한다. 사실 나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조금은 덜 아프면 좋겠다.
과거로 간 남편에 대한 좋은 기억, 머릿속 기억에서 이미 예쁘게 포장되어 나오는 추억 한 자락, 현재의 제자리로 돌려놓고 충분히 미워해 주고 싶다. 과거가 되어 버린 남편을 현재로 되돌릴 마술 같은 방법 하나 아시는 분 없을까? 그런 마법으로 주문을 건다면 그렇다면 그가 내 옆에서 엄청 욕먹으며 행복해할 텐데.
결국, 책을 덮는다.
오늘도 결국 남편을 생각하며, 시간을 죽였다. 이쯤 되면 그가 시간 살인자일까? 내가 시간 살인자일까? 넘어가지 않는 책을 붙들고 있는 것도 미련이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미화된 과거를 만들며 그의 빈자리에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