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세 식구가 살기에 딱 좋다는 30평대의 고층 아파트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무리해서 학군 따라 이사 온 지 8년 차가 되었다. 거실에 앉아서 베란다 방향으로 시선을 두면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은 하루를 온통 미술관으로 만들고 그 미술관에 아름다운 풍경화가 전시된다. 봄철의 파릇한 연녹색 잎이 신입생의 첫 등교일 만큼 가슴 뛰게 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비를 통째로 감상할 수 있다. 언덕 위의 고층 아파트, 그래서 시원스레 뻗은 산줄기를 감상하고 그 너머 아파트 단지부터 날씨 쾌청한 날이면 아파트 더 너머의 먼 산도 또렷해진다. 가을에는 도롯가의 은행이 노란 라인을 만들고 양옆 산에는 알록달록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겨울에는 스키장의 풍경이 따로 없다. 눈 덮인 설산과 하늘은 마치 한 몸인 양 은은하게 세상을 밝힌다.
이런 호강도 남편 덕이었는데 있을 때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호강에 겨워 다른 꿈을 꾸었다. 그래서였다. 남편에게 좁다고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졸랐다. 풍경이 발목을 잡고 8년을 한자리에 머물러 있었지만, 더 좋은 곳으로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넓은 곳도 탐나고 TV 속의 아름다운 집도 부러웠으니까.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넓고 좋은 집이 탐났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대학 진학만 하면 변두리로 집 지어 살자고 마당 있는 집에 남편이 좋아하는 황토방도 만들자고 나름 계획했었다. 남편은 더 열심히 일했다. 원래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한 계획은 더 근사했으므로.
요즘 티브이 프로그램에는 전원주택이 많이 소개된다. 예전에는 티브이를 보면서 저렇게 만들어야지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제 다 소용없는 짓이 되었다. 지금은 남편이 남긴 이 집이라도 지킬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남편은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가, 왜 몰랐을까? 그가 지켜준 것은 생활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존심까지였다.
그는 늘 나에게 말했었다. "김은령은 못 먹어도 Go지?" 그랬다. 나는 언제나 그에게 자동판매기 인양 요구했고 그는 그것을 들어 주었다. 모두 가능한 줄 알았다. 장난스럽게 No라고 하지만 결국은 들어 주던 그 많은 소원. 그는 언제나 나에게 산타클로스였다. 그런 그를 보내고 뒷정리를 하며 알았다. 자신보다 가족에게 아낌없이 주면서 행복해하던 사람이라는 걸. 아마 그를 통해 천사가 다녀간 건지도 모르겠다. 무슨 복으로 20년 가까이 그를 독차지했는지. 조금만 덜 누리고 살걸. 그에게도 내가 조금의 행복은 나누어 주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하늘나라에서 그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나를 만나 그래도 조금은 행복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