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에 이름과 사진을 넣는 작업이 오래 걸렸다. 여러 개를 모아서 한 번씩 작업한다니 시월 중순쯤 완료될 거라는 안내는 들었다. 갈 때마다 빈 벽만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빈 벽 뒤에 남편을 남겨 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추석 즈음에는 이름과 년도가 새겨져 있었다.
주말 부부인 동생이 이번에는 제부가 못 내려오니 우리와 납골당에 갔다가 근처의 관광지를 둘러 보자고 한다. 아들 시험도 끝났고, 가슴이 답답했던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들도 기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소식을 들은 친정언니와 다른 동생도 합류했다. 이참에 마음이 내키지 않아 아직 다녀오지 못했던 엄마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했다. 조금 망설이다 같이 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대식구의 이동이 결정되었다.
남편이 있는 야외 납골당은 규모도 컸지만,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 조카들이 가면 야외에서 뛰어놀기 좋은 곳이다. 일단 언니가 도시락을 준비하고 조금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전날, 갓난아기일 때부터 돌보았던 조카가 오랜만에 이모 집에서 자고 싶다고 해서 왔다. 초등 1학년인 조카는 남편이 딸처럼 아끼던 아이다. 조카는 집안 곳곳에 늘어난 남편의 사진을 보더니 "이모부는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라며 웃는다. 남편이 그렇게 가고 난 뒤, 한 번도 이모부에 대해 말을 뱉지 않던 아이다.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인 듯 추측되어 마음이 찡하다. 내가 봐도 한결같았던 몸무게에 한결같았던 성격이었다. 몇 달 전부터 유독 피부가 까칠해지고 피곤해하던 남편이 생각나 왜 그 변화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었다.
가을 하늘이 맑다. 코로나 1단계의 주말, 많은 사람이 이동 중인 모양이다. 조금 복잡한 고속도로를 달려 납골당에 도착했다. 벌써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우리도 남편에게 갔다. 밝은 표정의 남편이 보인다. 드디어 사진이 달렸다. 다른 분들의 납골당 단 아래에는 형형색색 조화로 꾸며져 있다. 이번에는 나도 며칠 전 꽃 시장에 나가 꽃을 준비했다. 평소 깔끔한 성향의 남편을 생각해 여러 색을 쓰지 않고 들국화와 주황색 야생화를 샀다. 키 큰 들국화를 나란히 꽂고 조화 꽃대가 보이는 곳에는 작은 키의 주황색 야생화를 꽂아 가렸다. 소담하게 꽃이 피었다. 남편의 회색 대리석 납골당이 조금은 화려해졌다. 다른 곳보다 깔끔한 느낌이라 남편도 좋아하겠다 싶어 기분이 좋았다.
며칠 전 언니의 꿈에 나타난 남편이 춥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엄마는 천주교식 장례 예식으로 옷을 태워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평소 즐겨 입던 겨울 점퍼와 두꺼운 양말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을 제단에 올렸다. 입고 따뜻한 겨울 보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엄마 마음 편해지면 되겠다 싶어 준비했는데 내 마음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 불태우는 것은 불가능하니 비닐에 싸서 근처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렇게라도 하면 되겠거니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
기도하고 한쪽에 마련된 벤치에 자리를 폈다. 워낙 넓은 곳이라 주변에 사람도 별로 없으니 소풍처럼 식사하기에는 딱 좋다. 간단히 준비해 간 식사를 마치고 가을여행을 시작했다.
리틀포레스트 촬영장과 화본역을 돌아보고 가을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귀여운 조카들은 물 만난 듯 뛰어다닌다. 남편이 좋아했을 모습이다. 유독 사랑한 조카들이다. 관광객이 많았지만, 최대한 조심하며 한 바퀴 돈 뒤, 폐교된 곳에 꾸며진 놀이 시설에 들렀다. 팽이를 돌리고 제기를 차고 달고나를 해 먹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즐겁다. 아들도 동생들과 오랜만에 즐거워 보인다. 그러면 되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띄엄띄엄 마련된 벤치에 우리 가족끼리 자리를 잡았다. 공기는 쾌청하고 단풍이 곱다.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군데군데 흩어진 흰 구름이 풍경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시원하다. 문득 이 자리를 좋아했을 남자가 생각났다. 혼자 대리석 방에 두고 온 그 남자. 그는 이런 여행에 따라 오면 조용히 뒷쪽에 물러나 앉아 즐겼었다. 소리 없이 뒤에 앉아 우리가 필요한 것이 생기면 챙겨 주고 아이가 다칠까 봐 눈을 떼지 않았었다.
그런 남자를 차가운 대리석 방에 넣어두고 우리만 이 파란 하늘을 만끽 중이다. 그나마 좋은 자리를 구하려 몇 바퀴를 둘러 정한 남편의 자리는 그곳에서 바라보는 산 아래의 풍경이 예술이다. 평소 답답한 것을 싫어하던 남편이 참 좋아하겠다 싶은 시원한 경치를 자랑하는 그의 새집이다. 아파트를 좋아하던 그는 먼 길 떠나서도 몇 동 몇 호로 이름 붙은 납골당을 분양받았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좋은 자리를 정했으니 말이다.
운동장 한쪽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를 생각했다. 잊고 있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곧잘 동네 공원에 나가 자리를 깔고 바깥 공기를 즐겼다. 나는 책을 한 권 챙겨 자리에 누워 책을 읽고 아이와 남편은 자전거나 퀵보드로 공원을 돈다. 몇 바퀴 돌다가 혼자 놀기 시작하는 아이를 두고 자리로 돌아오면 맨땅에 누운 내 머리를 들어 무릎 베게를 해 주곤 했다. 물론 조금은 쑥스러워하면서도 그랬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말로 표현하기보다 항상 시선이 따라오고 행동이 따라 오는. 그렇다고 말이 인색한 남자도 아니었다. 나와 아들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참 잘도 했다. 부끄럼 많은 남자치고는 놀라울 정도였다.
벤치에 앉아 잘 놀고 있는 아들을 보니 남편이 그립다. 해가 지기 시작하며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다. 이럴 때면 남편은 "이제 춥다. 가자." 하겠지. 그래도 놀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따뜻한 핫쵸코와 나에게는 뜨거운 커피를 대령할 것이다. 이제 그런 남자가 내 곁에 없다. 이렇게 좋은 날에 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