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이었다. 그런 건 따져 챙기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 갔는데 그런 것이 왜 필요하냐고 생각했다. 휴대폰을 뒤적이다 그가 떠난 지 48일째가 된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였다. 신경이 쓰였다. 무언가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다. 하루를 그렇게 찜찜한 채 흘려보냈다.
49일째.
불교식으로 하자면 49재 지내는 날이다. 그의 할아버지도 큰아버지도 작은아버지도 모두 지냈던 의식이다. 그리고 이 남자는 아내의 종교를 따른 이유로 본인에게는 빼앗긴 행사다. 가만 생각해 보면 종교를 바꾼 것도 그의 뜻은 아니었는데. 그는 이상한 미신을 가끔 들이대며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고 마음이 답답하면 관광지로 유명했던 한 사찰을 찾아가고는 하던 남자였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자 아차 싶다. 49재의 생략으로 섭섭했을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이제는 쉽게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머릿속의 생각이 많이 변했나 보다. 이렇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도 마음에 걸린다. 그에게 미안했고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설명이 안 되는 감정이다.
아들에게 내일은 아빠가 돌아 가신지 49일째이니 오전 학원과 오후 학원 사이의 간격 4시간 안에 둘이서 아빠에게 가지 않겠냐고 얘기했다. 흔쾌히 그러자더니 주말 아침잠이 많은 아들은 몇 번을 들락거리며 깨웠지만 결국 잠을 이기지 못했다. 뻔한 이유로 오전 학원 시간에 늦었고 결국 시간이 부족해 아빠에게 가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나 혼자 가려니 아들의 점심이 문제다. 궁리하는 나를 보더니 "엄마, 미안해. 아빠한테 못 가니까 미사에 함께 갔다 오자." 아들의 말에 본인도 속상하겠다 싶어 흔쾌히 그러자고 하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이제 무언가 해야 할 거 같은데 할 일을 못 찾겠다.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다가 울컥하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를 위해 내가 실컷 울어주기는 했었을까? 그는 내가 우는 것을 질색했었는데, 드라마를 보며 울어도 보기 싫다며 눈살을 찌푸리던 남자였는데 울어도 될까? 한 번쯤은 마음껏 울어 보고 싶었다. 마침 내게 3시간의 여유가 있다. 아들이 없는 그리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3시간. 꼭 계획한 것처럼 미안한 마음과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나는 2분 30초만 울라던 친정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한 시간을 울었다. 눈은 퉁퉁 부었고 숨이 고르지 않다. 꺽꺽 밭은 숨소리에 긴 호흡으로 숨을 고른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다니. 그를 보낸 후 시간은 더디기만 하더니 오늘은 한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숨을 고르고 얼굴을 정리하는데 또다시 두 시간이 흘러갔다. 아들이 올 시간이다.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시 더딘 시간이 시작되겠지.
49일째 그의 부재.
느리고 지루한 49일은 흘러가고 오늘도 다시 그를 기억하며 버틴다. 그를 기억하면 행복했던 순간이 생각나고 뒤이어 미안하고 아쉽다. 그러면 어김없이 슬픔이 쌓인다. 행복했던 기억의 결말이 슬픔이라니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의 49일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