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나섰다.
5일만에 납골당에 가는 길이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날씨은 추워졌고 산 중턱에 위치한 납골당은 다른 곳보다 더 쌀쌀하다. 눈이 쏟아질 것 같은 찌푸린 날씨와 칼바람을 보면 조만간 방문이 어려워질 것 같다. 눈이 오면 당분간은 못 올 수도 있겠다 싶어 지난 번에는 금방 다시 오지는 못 할 거라고 말하고 돌아 왔었다. 생각보다 빨리 남편에게 갈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 아들과 남편을 모셔 둔 자매님 두 분과 함께 가는 길이다.
어쩌다보니 우리만 길을 나섰다.
5년 전 장성한 아들을 잃은 분과 3년 전 남편을 보낸 분과 남편 잃은 지 이제 겨우 56일째인 내가 함께 가는 길이다. 묘한 동질감은 가는 내내 차안을 맴돈다. 한 가지라도 더 도움되는 얘기를 해 주고 싶어했다. 위로를 위한 말보다 앞으로 내가 겪을 감정의 변화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이야기 해 주고 싶어하셨다. 그동안 다른 분과 나누는 위로와는 느낌도 다르고 받아 들이는 감정도 다르다.
동지같은 심정으로.
묘원에서 진행되는 미사에 함께 참여하며 가만히 그분들을 살펴 보았다. 예전에는 참 조용하고 말이 없는 분들이라 어려워했었다. 사실 이곳으로 출발할 때만 해도 어렵고 불편했다. 옆 자리에 앉은 신자들은 소곤대며 할 이야기도 많은 듯 한데 일찍 도착해 앞자리를 차지한 우리 세 명은 입이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앞만 보고 앉아 있는데 조금도 어색하지가 않다. 그래서 가만 생각해 보니 그들의 분위기를 내가 닮아 가고 있다. 이제야 그들의 무거운 입이 이해가 된다. 최근 말이 줄어든 나는 매사가 귀찮기도 했지만 남편을 먼저 보낸 죄인 같은 심정이 되어 자꾸 움츠러드는 모습에 스스로 못마땅하기도 했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그럴 수 밖에 없다. 남편에게 잘못한 것만 생각났고 내 잘못이 모여 그를 보낸 것만 같은 생각 사라지지 않는다. 정성 들여 미사를 드리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같은 아픔을 가졌으니 동지같은 심정으로.
성전과 가까운 위치에 납골당이 있다. 3년 전 돌아가신 분과 남편의 납골당이 가까워서 놀랐다. 서로 보이는 곳이고 서너걸음이면 닿을 위치에 남편들이 있다. 둘다 너무 젊다. 남편도 젊지만 그분도 남편보다 조금 손위이니 안타까울 수 밖에. 형제님의 납골당 앞에서 먼저 기도를 드리는데 자매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기도문을 따라하지 못하고 있다. 3년은 짧은 시간인가 보다. 감정이 무뎌지기에는 짧아도 너무 짧다. 남편의 앞에서도 기도가 시작되었다. 한 분이 기도를 선창하시다가 "세상에 아직 요셉씨 보낸지 두 달도 안 되었네." 하신다. 순간 눈물이 핑 돈다. 연신 내게 "미안해. 생각도 못했어. 이렇게 밖에 안됐다고 생각도 못했어. 미안해." 하시는데 눈물이 폭포수가 된다. 나도 잊고 있었다. 날짜로 챙기다 보니 56일이라는 날짜는 두 달이 채 못 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너무도 긴 시간을 지나오는 기분이라 두 달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이렇게 아픈데 두 달도 지나지 않았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겨우 기도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자매님들이 나를 안아 주고 등을 두드려 준다. 애써 감정을 수습하며 괜찮다고 습관적인 말을 뱉는다. 납골당에서 묘지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5년 전 갑자기 떠난 젊은 형제님은 웃음이 예쁘고 사람 좋은 청년이었다. 그 당시 우리 모자에게는 충격적인 죽음의 대면이었고 아들에게도 처음 겪는 이별에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는 34살에 세상을 떠났다. 날씨도 좋고 볕이 따뜻하게 내리쬔다. 최근 추석 명절과 위령 성월 덕분인지 곳곳의 묘지 앞은 새로운 꽃으로 갈아 입고 있다. 이 형제님에게도 정성된 기도를 드렸다.
시간이 해결해 줄까?
이번에는 사정이 생겨 함께하지 못한 분의 가족묘지도 한바퀴 돈 뒤 3년 전 남편을 보낸 자매님의 부모님 묘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자매님의 남편은 마지막에 병으로 고생하셨다고 한다. 들어보니 시집살이도 만만치 않았고 뒤이어 남편 병 간호까지 하느라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며 부모님 묘지의 위치도 가물한 모양이다. 묘지의 위치를 찾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무안하고 부끄러워하는 자매님께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하며 겨우 그녀의 부모님 묘지를 찾을 수 있었다. 나란히 모셔진 묘지 앞에서 기도를 바치는데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비석에 적힌 이름이 많다. 슬하에 자녀가 10명이다. 딸 여덟에 아들 둘, 어머니가 많이 고생하셨겠다 싶어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 집도 칠 남매이니 부모님의 삶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기도를 마치고 둘러보니 여기에는 꽃도 없지만 오랜시간 돌보지 않은 티가 났다. 사망년도를 보니 아버님은 10년 전, 어머니는 20년 전이다. 시간이 그 정도가 되면 찾아오는 이가 적어지는 건가 싶다. 어머니 묘지 위에 흙덩어리가 떨어져 있고 묘지를 덮은 대리석이 비틀어져 있다. 마음이 짠해지며 안타까웠다. 자매님은 내색하지 못했지만, 어쩔 줄모르는 것이 눈에 역력했다. 이분은 운전면허가 없어 혼자 이곳까지 와 보기도 힘 들었을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조용히 다가가 이제 오고 싶을 때 언제든 연락하라고 같이 오자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갈 때 언제든 연락해 달라고 하신다. 그 마음이 읽히니 함께 숙연해진다.
과연 시간이 해결해 줄까?
볕 좋은 벤치에 앉아 미리 준비한 커피를 마셨다. 한 바퀴 돌고 오니 시간도 꽤 지났고 몸도 지쳤다. 커피가 달다. 차 한잔의 여유를 부리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진심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 더 심장에 빨리 와 닿는다. 삼년 동안 정말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는 자매님은 계속 눈물을 글썽이신다. 아픔이, 생생한 아픔이 그대로 전달되면서 나를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앞으로 더 아플텐데 하는 안타까운 눈빛에 나도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제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아직도 아프다. 청승떨고 있다고 할까 봐 슬픔을 표현하지 못 했는데 이분들 앞에서 나는 어리광을 부린다. 힘들다고 앞이 캄캄하다고. 천천히 준비하고 알아 보라고 당부하신다. 아들을 보낸 자매님은 5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들 묘지에 오는 날이면 집에 혼자 있는 남편이 슬픔에 술 한 병을 다 비우며 힘들어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매님을 보며 내 슬픔에만 빠져 있으면 안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나는 내 슬픔에 빠져 아들을 챙기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 자매님은 나를 볼 때 마다 아들의 안부부터 물으며 괜찮냐고 하셨는데 이제 그 의미를 알아 듣겠다 싶어 이기적인 나를 반성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매님에게 전화가 왔다. 다른 자매님을 통해 동생이 나를 찾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전화를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미사 때 꺼둔 휴대폰을 켜지 않은 게 생각났다. 전화를 켰다. 문자가 난리다. 아들도 동생도 연락이 안 되는 나를 찾고 있었다. 동생이 전화를 받는데 울어서 코맹맹이 소리가 난다. 전화를 꺼두고 잊었다고 했더니 평소 전화 안 받은 적이 없는 내가 세 시간 가량 연락이 안 되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울었나 보다. 나는 "설마 내가 죽었을까 봐? 나 안 죽어." 하며 농담을 했지만 미안했다. 내 부주의로 마음 졸였을 동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 슬픔만 생각하느라 잠시 주위를 돌아보지 못했구나하는 자각이 들면서 정신을 좀 차려야겠다는 마음은 든다. 그런데 잘 될 지는 모르겠다.
위로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날씨가 참 좋다. 남편의 마지막 선물이 된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기분좋게 달린다. 양 옆으로 단풍이 예쁘다. 세상은 질서정연하게 다듬어져 있고 태양은 세상 환하게 빛을 전한다. 덕분에 세상이 반짝인다. 이렇게 반짝이는 세상에서 나는 그래도 살아 있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를 가슴에 묻었기에 이렇게 아프지만, 수 많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은 곁에서 내 걱정을 하고 있으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슬퍼하고 정신을 차려야겠다.
그러다 보면 아파도 살아지겠지. 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