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

by 완뚜

기어이 나를 불러 낸다.
집에서 웅크리고 있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 주부터 다시 시작하는 모임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주1회 모임인데 예전부터 권유해 오던 모임이다. 저녁에 나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던 한 남자의 반대로 나만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 강제로 불려 나갔다. 집에 웅크리고 있지말라는 그들의 배려였다. 불편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신입생 환영회라며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그들과 나는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보냈다. 가끔 내 눈치를 보는 그들에게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떠들고 웃었다. 남편의 방해도 없다. 해방감을 느껴야 하는데 공허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밤 시간에 나와 있으면 시간마다 전화와 문자를 받았고, 언제 들어오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랬던 남자가 참견을 않는다. 나는 모임을 하면서도 무언가가 계속 걸렸다. 그 찜찜함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온 가슴으로 바람이 들이찼고 춥다. 뒹구는 낙엽마냥 쓸모없는 존재가 된 기분에 휩싸인 채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현관을 여는 순간 깨닫는다.

없다.
계속 전화와 문자로 언제오느냐, 빨리와라를 노래하다 가도 정작 내가 들어서면 재밌었냐, 맛있는거 먹었냐며 물어보던 남자가 없다. 그래서였다. 방해받지 않은 시간도 긴장하는 시간도 없어져서 이제 나는 자유부인이 되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하고 외로울까?

도서관에서도 이제 자유로우니 사서 봉사를 좀 해 줄 수있겠냐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제의를 받았다. 나는 그동안 남편의 제약을 받던 여자였다. 계속 걸려오는 전화와 외부 활동이 많아지는 것을 싫어 했던 남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던 그들이다. 대부분 오랫동안 나를 지켜봤던 사람들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간섭하는 남편이 없다. 부부간의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해 조금은 그 간섭을 받아 줬던 나는 갑자기 자유부인이 되었고 이런 상황이 어색하다. 지인에게 나는 이제 제약없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사실 내 마음 속은 그때보다, 남편이 옆에서 간섭할 그때보다 더욱 자유롭지 못하다. 그때는 남편이 화를 내더라도 내가 좋으면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갈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아들은 다 해 주며 키운 늦둥이 외동아들이다. 입맛은 까탈스러워서 밑반찬은 먹지 않고 금방 만든 메인 반찬만 먹는다. 그런 아들을 맡기고 부탁할 사람이 없다. 저녁모임에 나갈 수 없는 이유는 통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나 된 아들을 챙길게 뭐가 있냐고 알아서 혼자 먹게 하라는 그들에게 그럴 수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제 나는 남편의 간섭없이 밤시간에 하고 싶은 모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들은 어쩌지? 집에 혼자 있을 아들 생각에 마음껏 어울리지도 못한다. 혼자 두고 밖에 나와 있는 나를 보며 하늘나라에서 화가 나 씩씩거릴 남편이 생각나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남편보다 더 큰 간섭이 있다는 걸 간과했다. 아들이 집에서 혼자 잘 있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혼자 두는 것이 마음 아프다. 아빠 없는 빈자리에 나라도 옆에 있어 주어야 하는게 맞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남편이 구속하듯 굴었지만 내 자유는 남편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빼앗긴 남편, 그가 가지고 간 내 자유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혹시 영원히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

갈망하던 자유부인이 되었다.
그런데 반쪽짜리 자유부인은 자유롭지 못하다. 마음의 구속은 어느 때 보다 강하다. 남편의 간섭이 그립다. 남편과 바꿀 수 있다면 지금 이 자유를 돌려주고 싶다. 영원히 그에게서 자유롭지 못할 나의 뒤늦은 구속감은 열패다. 철저히 그에게 졌다. 마지막까지 나를 구속해 두고 떠났다. 그가 만들어낸 온갖 구속의 이유가 모두 머릿속에서 맴돈다. 흡사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나는 그의 최면에 걸려 정신이 없다. 최면을 풀어 줄 그는 이미 없는데. 내 기억은 점점 더 또렷해진다. 그가 나를 구속했던 이유. 그리고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나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자유부인이 되었다. 납골당에 그를 두고 돌아온 그날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