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쉽게 살았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다복한 가정에서 성장했고 한창 놀 나이에는 아빠의 사업이 승승장구하니 아쉬울 것이 없었다. 대학생일 때는 아빠의 고급승용차를 빌려타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녔고 직장에서는 운이 좋아 외근시 사용하라며 승용차를 지급 받아 업무를 진행했다. 직장마다 젊은 사람이 많은 곳이라 어울려 다니며 여한없이 놀았다. 삼십대가 되어서는 여행에 미쳐 과감히 사표를 내고 결혼도 미련없이 포기하고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배낭여행을 즐겼다.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내 행운을 만끽했다.
나는 거침이 없었다.
하고 싶은 건 하고 다녔고 갖고 싶은 건 시간이 걸려도 결국 내 손에 넣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나는 복을 타고 난 여자라고 그러니 나와 가족이 된 남편과 아이도 승승장구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 집은 모두 내 덕이니 남편은 내게 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큰 소리쳤다. 살면서 사소한 어려움은 인생에 있을 법한 다들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긍정적이고 행복한 여자가 나였다.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공주처럼 살게 해 주겠다는 감언이설로 내 마음을 움직였다. 결혼 후에도 여행은 계속 가도록 해 주겠다고 했고 그 약속은 잘 지켜졌다. 그는 믿음직한 남자였고 당연히 그를 믿었다. 처음 결혼생활은 물론 녹녹지 않았다. 자유롭던 나를 구속하는 모든 환경이 불만이었고 사소한 다툼도 있었지만 그것은 누구나 신혼 초에 겪는 과정이라 생각했고 우리 부부는 시간을 들여 서로 맞추어 갔다.
생활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며 달랐던 서로의 환경을 맞추며 서서히 적응되었고 부부 사이는 더 없이 평온했다. 나는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단기간 여행은 가족이 함께 갔지만 장기간 여행은 직장생활로 시간을 낼 수 없는 남편을 두고 아들과 둘이 다녔다. 남편은 보름 이상 빈 집에서 혼자 지내면서도 투덜거리지 않고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 언젠가 그도 시간을 만들어 베니스에서 곤돌라를 탈 날을 계획하며 즐거워했다.
최근 몇 년간 우리에게는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더 없이 행복했다. 공주처럼 사는 나를 주위에서도 부러워했다. 세상 가장 행복한 여자, 남편의 사랑을 잔득 받으며 아낌없는 지원까지 받던 나는 남 부럽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 내 덕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한번도 쉽지 않은 유럽여행을 몇 번이나 보내 줄 정도로 오직 우리 모자를 위해 존재하는 남자로 옆을 지켰다. 경제적으로도 자리를 잡는듯 했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니 지금만 같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굴곡 없는 인생은 없다.
인생은 희노애락이 있고 행불행이 번갈아 온다고 했던가? 나는 크고 작은 시련은 다음에 오는 행복이 있기에 참을 수 있다고 믿으며 쉽게 생각했다.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나의 인생은 장미빛이었다. 인생 굴곡은 종잇장 차이라 생각했다. 마음만 바꾸어 먹으면 별 일 아닌 일 투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당당한 여자, 자존감 높은 여자였다. 그렇게 큰 바윗돌에 걸려 넘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첫 걸림돌은 상상보다 크고 단단했다.
내 인생 최초라 할 만큼 큰 돌에 걸려 넘어졌다. 전혀 상상해 보지도 못 했던 큰 돌이 땅에서 솟아 올라 내 발을 걸었다. 예감하지 못한 충격으로 땅에 고꾸라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철철 흐른다. 무릎부터 촉대뼈까지 피멍이 시퍼렇다. 발목은 꺽여 걸음도 뗄 수 없다. 일어나지 못할 만큼 타격이 크다. 한참을 바닥에 무너져 뻗어 누워 있었다. 아픔은 여간해서 줄어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119가 필요하겠다. 사람들이 내 상처에 약을 바르고 주물러 주고 같이 앉아 울어 주었다. 그리고 방에 눕히고 쉬라고 잘 먹고 잘 쉬라고 한다. 침대에 누워 오지않는 잠을 청하며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아프게 넘어진 적이 있었던가?
내 행운은 모두 어디로 간거지.
혹시 내가 재수없는 여자가 되었나? 아니면 신의 질투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 교만에 대한 벌이 이런 건가? 겁이 났다.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용기를 내어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하는데 땅을 짚은 팔에도 일어서야 하는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제 나는 재수없는 여자가 된 것 같다. 그럴리 없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논리인데, 이성은 그렇게 말하는데 가슴은 남편을 어처구니 없이 먼저 보낸 재수없는 여자일까 봐 겁이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들이 그렇게 생각할까 봐 겁이 난다는 게 맞다. 당당했던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고 자존감 높던 나는 허무해졌다.
성당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가 미사 담당이 되면 제대의 준비는 거의 혼자 도맡아 했었다. 수년간 습관처럼 혼자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공동체 미사담당이 돌아왔고 배려에 의해 나는 제외되었다. 그러나 자매님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도와드리고 싶어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제대 앞에서 움찔하며 몸이 멈췄다. 나는 제대에 올라 갈 수가 없었다. 멈짓거리며 발이 땅에 붙은 것만 같다. 이게 뭐라고 나같은 여자가 올라가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의 무게는 천근이 되어 다리를 붙들어 맨다. 나는 나의 변화에 화들짝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혼자 제 발 저린 여자처럼 멈춰서서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무안함 끝에 무서운 생각이 든다. 이러다 진짜 재수없는 여자가 되고 말 것만 같다.
남편이 떠나고, 아들은 왼손가락이 부러지더니 이주일 후 오른손을 다쳐왔다. 나보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자꾸 이러는 건데. 내 인생 왜 이렇게 꼬이는 건지. 나 너무 힘든데 마음은 대책없이 자책질을 시작하는데 그가 없다. 이럴 때 웃으며 "돈 좀 줄까?" 하고 놀릴 남편이 없다. 오늘은 울지 말아야지 했는데 또 눈물이 난다. 내가 재수없는 여자가 된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