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처럼 먹고 있는 나를 느낀다. 아이와 삼일을 집에서 지냈다. 혼자 먹게 하고 싶지 않아 세끼를 모두 찾아 먹고 있다. 원래도 한두끼만 먹는데 최근에는 거의 먹는 일이 지옥같았다. 담낭이 없는 나는 원래 소화가 시원치 않았는데 최근에는 먹는 것도 줄었다. 의미없는 식행위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위가 줄어 든 것인지 일찍 배가 차고 명치가 더부룩해진다. 시도 때도 없이 구역감이 올라온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소방관이 동료 소방관들을 사고로 보내고 자주 시체 썩는 냄새가 나서 고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남편을 보낸 후 시체 썩는 냄새를 맡은 것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밀려드는 구역감에 난감했고 기분이 저조해지곤 했다. 아마 일종의 죄책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게 뭐라고 남편을 그리 보내 놓고 나는 오늘도 꾸역꾸역 입으로 음식을 밀어넣고 있다. 양의 문제보다 정신적 포만감이 나를 미치게 한다. 명치의 답답함과 구역감과 이러고 있는 나의 뻔뻔스러움이 싫다. 남편은 속이 불편하다며 굶다가 응급실로 갔고 그리고 영원히 떠나 버렸다. 그렇게 맛집을 좋아하고 먹는 낙으로 살던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배만 고프지 않으면 되고 못 먹는 음식만 아니면 되는 지극히 단순한 식습관을 가진 여자였다. 아들과 마주 앉아 대화도 없이 밥을 밀어 넣는다. 밀려드는 구역질을 참으며 벌칙처럼 식사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아들을 키워야 하고 아들의 의지가 되는 어른이어야 한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방구석 공주님이 난데없이 밖으로 내 몰리고 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삶의 의미를 잃는다. 나는 점점 더 슬퍼지고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고 점점 더 그가 그립다. 시간이 해결해 줄줄 알았는데 정신은 모두 내려 놓고 싶을 만큼 힘겹다. 내려놓을 수도 없는 그것의 무게에 질식할 것만 같다.
돼지처럼 먹고 돼지처럼 자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내일은 괜찮아지려나 하며 잠이 들지만 어김없이 힘겨운 아침이 돌아온다. 오늘도 나는 그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음을 주입시킨다. 실감이 도통 나지 않으니 이럴수 밖에. 잠들기 전 의식처럼 그렇게 이제 그는 없다. 영원이 돌아올 수 없다. 눈으로 보고 보내 주지 않았는가? 주입시키고 또 주입시킨다. 자꾸만 그날의 기억을, 잊혀지고 있는 그날의 악몽을 애써 붙잡는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정신을 바로하기 위해서, 미치지 않기 위해서. 이 지루한 괴로움은 언제쯤 끝이 날까? 아프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온몸을 흔들고 소리라도 지르고 나면 조금은 시원해 지려나. 답답한 체증이 내려가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체증 때문에 아프다.
그래도 나는 강해져야 한다. 홀로서기는 언제나 두렵고 불안하다.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 않고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는 없다며 시작하기를 종용한다. 그런데 앞으로 나가야 하는 한걸음 한걸음이 무거워 나아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두려움 만큼 사람을 멈짓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나는 그 두려움으로 오늘 또 하루를 갈아 먹는 중이다.
아! 뱃속에 두려움이 가득 찼구나. 그래서 하루종일 명치가 더부룩하고 두려움의 역한 냄새에 구역질이 나는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