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탈이 나는 몸둥아리에 반기를 들었다. 근본이 몸 쓰는 일을 싫어하고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만 좋아한다. 그래도 그 한 자락에 여행을 좋아했으니 예전에는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서 몇 달간 걷기를 훈련했다. 아침 출근 길의 형부 차를 얻어 타고 돈 한 푼 없이 도로가에 내려 달라고 한다. 그곳에서 집까지 2시간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면 처음에는 진이 빠지고 내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따라온다. 그런데 이미 발권해 놓은 비행기 표도 아깝고 한 달 넘는 시간을 무거운 배낭 메고 걸어 다닐 생각을 하면 포기하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형부의 차에 오르곤 했었다. 그렇게 단련된 다리로 무리없이 실크로드를 걷고 돌아 왔었다. 나는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하고 마는 여자였다.
언젠가 예능프로에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운동을 시작하는 배우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는 것을 보았다. 그 배우의 말이 가슴에 남아 있다. 그는 말했다.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할것인지 하고 싶지 않은지 생각을 하지말고 그냥 몸에 익혀 습관으로 만들라고, 아침에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듯이 그렇게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 말이 내 삶의 기준이 되었고 그래서 나는 걸을 수 있었다. 일단 하자고 마음먹고 나면 앞만 본다. 그렇게 걷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봉사활동을 했다. 하기로 결정한 후의 일관된 나의 태도 그것은 성취감도 따라오는 만족스러운 삶의 기준이 되어 주었다.
무엇이던 다 해 주는 남편을 만나고 대형마트도 가지 않게 되었다. 이사 후 동네에 상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남편이 알아서 다 해 주니 나는 요구만 하면 되는 참 쉬운 삶이었다. 가사 일과 도서관 봉사, 취미 생활이 전부였고 돌아 다니는 나를 위해 차까지 사 준 착한 남자와 살았다. 그래서였다. 운동량은 부족했고 몸은 무거워졌으며 건강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자궁에 탈이 나고 담낭에 탈이 나고 허리와 다리 관절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이명이 들리고 노안도 일찍 찾아왔다. 큰 수술을 하며 지옥도 맛 보았고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겁이 났다. 두 번째 수술 후 나는 죽음이 두려워졌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걷고 금방 돌아오기, 점점 속도를 높이고 더 많이 걷기. 하루가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 년이 되었다. 다행히 몸은 조금 가벼워졌고 움직임이 자유롭다. 물론 살이 빠지거나 어깨와 관절의 아픔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냥 조금씩 더 잘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움직이지 않으니 게을러졌던 삶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찾아왔다. 무슨 일을 도모하면 꼭 걸려 멈춰 서는 일이 생기곤 한다. 결국 공원 운동도 포기하고 집에 주저 앉아 비대면 수업 중인 아들과 투닥거리는 시간이 되었다. 일상이 무료했다. 아침 운동 후 샤워로 시작하는 개운한 하루가 사라졌다. 다시 소파 한 쪽이 내 차지가 되었고 집안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들의 잔심부름만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격상되었던 단계가 조금 완화되고 마스크를 끼고 숨은 막히지만 그래도 공원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강제로 멈췄던 운동이니 그 감동은 더 대단했다. 이렇게라도 나 올 수 있다니 행복했다. 이미 몇 달 동안 굳은 몸은 적응시간도 필요했지만 모처럼 상쾌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나를 응원해 주던 남편을 허무하게 떠나 보내고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을 닫았다. 아무도 몰랐지만 내 마음은 그랬다. 세상과 담을 쌓았고 그것은 철저히 혼자만의 세상이었다. 의미 없는 삶, 실패한 삶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 나를 좀 먹고 있었다. 그냥 아닌 척 했을 뿐 사실은 그랬다. 남편의 연미사와 집만 오가며 땅굴로 들어갔다. 물론 주위에서 기분전환해야 한다고 불러내면 거절하지는 못했다. 나는 거절에 약한 여자니까. 그런 마음에도 없는 외출은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두달째, 운동은 멈추었다. 내 몸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픈 것이 뭐 대수인가? 건강했던 사람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사라지는데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데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혼란한 감정은 곪아가고 있었다. 몸이 찌뿌듯하고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다. 아픈 곳이 늘어나고 있다. 아들이 자꾸 아프다. 내가 버려두고 기본적인 의무만 지키고 있던 시간동안 아들은 자꾸 병이 난다. 헬숙해진 얼굴로 식은 땀을 흘리며 잠든 아들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남편이 떠난 뒤 우리 모자가 점점 망가지고 있었구나. 남편이 원한 건 이게 아닐텐데.
아직은 밖으로 나가 환한 빛과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는 싫은데 자꾸 아픈 곳이 늘고 있는 몸둥아리는 걱정이다. 아들과 살아야 한다. 몸을 지키고 정신을 깨워서 어떻게 하든 일어나야 했다. 여전히 나에게는 마음을 먹는 일이 중요했다. 그 뒤에는 습관처럼 살면 됨으로.
시작은 가볍게, 그러다 보면 예전으로 돌아가겠지. 다른 문제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건강한 정신으로 고민하면 될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작은 워킹머신을 들여 놓았다.남편 벌이가 없어진 나는 쪼막손이 되어 지출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하기로 했다. 뭔가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만도 내게는 큰 변화였으니 그거면 된다 싶다. 물론 공원을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고 사진을 남기는 행위는 없지만 당분간은 이 땅굴이 안전하게 느껴졌다. 워킹머신에 올라 베란다를 보면 예전에 내가 사랑했던 하늘이 여전히 있고 나는 여전히 걷고 있고 남편만 여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여전한 것들 속에서 힘을 낼 것이다. 그렇게 다시 걷기 시작했다. 땀을 빼고 하루를 시작하는 상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두 달간 이 시간은 혼자 우는 시간이었다. 이제 그 시간을 걷기로 채운다. 지금 나에게 힘을 주는 것 두 가지는 글쓰기와 걷기이고 그러니 나는 오늘도 걸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수성못에서 걷기도 할 것이고 한티 성지 순례길도 걸을 것이고 아이와 웃으며 여행도 떠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오늘도 작지만 내 다리 두 짝을 거뜬히 버텨 주는 워킹머신 위에서 또 걷기를 시작한다. 당분간은 만족하겠지만 곧 맑은 공기가 그리워지겠지. 그러면 또 공원에 나가 걷고 사람을 구경하고 풍경을 즐기는 산보같은 운동이 될 거다. 그럼 되는거다. 서서히 밖으로 나가고 조금씩 예전으로 돌아가면 비록 빈자리가 크지만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다. 그렇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그래서 집안에서라도 한발을 딛는다.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한 새로운 한 걸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