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와 솥뚜껑

by 완뚜

아이가 아프다. 어제부터 잔기침을 하더니 결국 열이 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열이 있어 담임선생님에게 연락 드리고 시간에 맞춰 병원에 들렀다. 날씨 때문에 감기일 거라고 한다. 코로나도 걱정이니 약을 독하게 지어서 빨리 낫도록 하는 게 좋겠다며 처방전이 나왔다.

아들이 많이 아프다. 얼굴은 허옇게 핏기도 없고 입술은 바짝 말라 텄다. 열이 있는 얼굴에는 식은 땀이 흐른다. 보고 있으니 덜컥 겁이 난다. 약을 먹고 잠이든 아들을 시간마다 숨은 쉬는지 확인하고 있는 내가 못나고 어리석다. 남편이 배가 아프다고 하고 하루 만에 그렇게 떠난 뒤 우리 모자는 작은 병에도 두려워하고 있다. 트라우마가 생긴 거 같다.

담임선생님께서 걱정이 되시는 지 전화가 왔다. 열이 나서 결석을 한 아들이 등교를 하기 위한 절차를 알려 주신다. 코로나 검사를 해서 음성이 나오던지 아니면 약 없이 일주일 이상 열이 나지 않아야 등교가 가능하다고 한다. 학교 보건 정책이 그렇다고 안타까워하시며 검사 받기를 권하신다. 큰일이다. 생활기록부가 중요해 조퇴도 조심스러운 고등학생이 긴 결석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병원 의사선생님의 소견서가 없이 개인이 검사를 받으면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글이 있다. 비용도 걱정이었지만 빠른 등교를 위해 검사를 권하시는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잠시 비용과 등교 사이에서 고민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급히 관할 보건소에 전화를 넣었다. 검사 신청에 관해 물으려는데 담당부서로 연결해 주겠다며 혹시 연결이 안 되면 다시 걸어 보라고 전화번호를 준다. 당연히 연결이 되지 않았다. 관공서 전화가 쉽게 연결 된 적이 있던가? 고난의 시작을 예감하고 새로 받은 번호로 계속 걸었다. 두 시간 가까이 80회를 넘게 걸다가 조급해진 마음에 선별 진료소가 있는 병원도 찾아 보았다. 가까운 선별진료소 병원이 바로 남편이 있던 병원이다. 병원에도 전화를 걸었다. 마찮가지다.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병원의 선별진료소는 응급실 앞에 있다. 응급실의 벤치에서 두달 전 남편이 쓰러졌다. 어쩔 도리가 없어 전화는 걸었지만 그곳으로 데리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도 통화가 되지 않는다. 살짝 다행스러운 마음이 든다. 1339에 전화를 넣었다. 설명을 하니 학생은 보건소로 우선 연락하라고 한다. 바로 방문하지 말고 전화 예약을 하라는데 알려주는 전화번호가 처음 통화를 했던 그 번호였다. 보건소 직원이 알려 준 번호는 계속 먹통이었으니 상황이라도 알아 볼 요량으로 다시 처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예약하려고 한다는 말에 여기서 바로 예약 가능하다는 답변이다. 나 지금까지 뭐 한 거지? 남자 직원이 담당부서라며 알려 주고 돌려 준 곳은 뭐였지? 두 시간을 헤매고 마음 졸인 후 겨우 예약을 했다. 아이의 주민번호, 주소, 학교를 묻는다. 이건 역학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정보라고 한다. 증상도 묻는다. 발열이 있는지 가래가 끼는지 근육통은 있는지, 아들은 두 가지가 해당된다. 담당자는 두말 없이 예약을 받아준다. 순간 덜컥, 아닐 거라고 그냥 학교 등교시키기 위한 검사라고 생각하고 예약을 하는데 증상을 듣더니 쉽게 예약이 되고 역학 조사 얘기도 나온다. 겁이 난다. 보건소까지는 대중교통 이용하지 말고 자차로 오라고 한다. 결과 나오기 이삼일 전은 가족 모두 자가 격리 대상이다. 가족이 모두 몇 명이냐고 묻는다. 나와 아들 둘 뿐이라고 했다. 한참을 전화기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다른 가족 더 없으세요? 없다고 나 혼자 뿐이라고 말했다. 당황한 직원이 어물적 다른 얘기로 넘기며 통화를 마쳤다. 그 아가씨 당황했겠다.

시간을 맞춰 보건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들 이름의 명단이 없다. 몇 시간 전 예약했는데 명단이 아직 본관에서 넘어오지 않았다. 아들의 순서가 자꾸 밀린다. 진료소 입구에는 뉴스에서 만 봐 오던 흰색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고 한쪽에는 앰블란스가 몇 대 서 있다. 명단이 넘어 왔는지 드디어 아들 이름을 부른다. 천막으로 둘러진 길을 화살표로 따라 간다. 아들만 보내고 나는 밖에서 연신 아들에게 시선을 둔다. 불안해 하는 아들이 여간 안쓰럽지 않다. 분위기는 살벌하고 혼자 검사를 받으려 대기하고 있는 아들이 걱정되었다. 그곳에 따라 온 부모님들은 다들 눈빛이 걱정으로 가득하다. 평일 낮 시간, 아들 또래의 아이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검사는 예상보다 더 간단했다.

집에 도착한 아들은 현관에서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샤워를 한다. 나는 옷가지를 모아 세탁실로 갔다. 엄마도 빨리 샤워하라는 아들의 불호령이다. 이렇게 철두철미한 아들인데 절대 코로나에 걸릴 일은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보건소에 예약 전화를 할 때 증상을 말하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예약을 받아 주니 더 불안했다. 걱정으로 잠 못드는 밤이 되겠다. 아들은 지쳐 약을 먹고 또 잠이 들었다. 아빠를 보내고 두 달, 내색하지 않았지만 혼자 얼마나 속 끓이고 힘들었을까? 몸살 앓는 것이 당연하다. 덩치만 크고 아기 같았던 녀석이 혼자 삭히고 참았을 생각을 하니 울컥한다.

자가격리 지시를 받고 집에서 지낸지 이틀째, 결과는 언제 통보 받게 되는 걸까? 아닌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 또한 생기니 불안하다. 결과는 어떤 식으로 받게 되는지도 듣지 못했으니 무작정 기다리는 중이다. 지루하고 불안하다. 시간마다 확인하는 아들도 불안한 모양이다. 주말까지 끼였으니 늦어질까? 주말에 몰려있는 학원도 모두 스톱시킨 상태고 집에서 둘이 먹고 자고를 반복 중이다. 기다림은 역시 힘겹다.

남편도 검사를 받았었다. 병원으로 가기 전 열이 났다. 쓰러진 뒤 진행된 코로나 검사결과를 기다렸었다. 그 결과에 따라 중환자실로 올라 갈 수 있는데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계속 응급실을 차지 할 수 없어 결과가 나오기 전 격리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랬는데 장례식이 끝나고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중환자실에 올라가기 전, 이미 그의 휴대폰으로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입니다." 라는 문자가 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걸 보고 한참을 울었다. 이미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던 남자의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었다. 그의 휴대폰을 확인할 생각도 못하고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던 나의 어리석음과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응급실에서도 격리되어 있었던 남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비닐막에 가린 남편을 볼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혼자 사투를 벌리고 있는 남자의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던 상황이 모두 웃겼다. 한편의 블랙 코미디 같았다.

아들의 증세는 호전되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결국 결과를 통보받지 못하고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 또 학교 등교를 하지 못했다. 설마 오늘은 결과가 나오겠지 그렇게 기다렸다. 시간은 더디게 가고 있었다. 결국 오후가 되었고 기다리다 지친 나는 보건소로 전화를 걸었다. 연락 못 받았냐고 문자 보냈다는 대답이다. 보낸 전화번호를 불러준다. 처음 듣는 번호다.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 아들 이름이 전달 되었겠구나 싶어 찝찝하다. 다시 보내 주겠다며 검사결과는 음성이라고 알려주며 전화를 끊었다. 받은 문자는 담임 선생님께 보내 드리고 아들에게도 보여 주었다. 내일부터 학교 갈 수 있다고 좋아한다. 아빠의 장례식 후 한동안 아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둘이 많이도 싸웠다. 설득도 하고 혼도 내고 그래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랬던 아들이 학교에 갈 수 있다며 반가워 한다. 다행이다.

이틀간 열이 났고 몸살로 앓아 누웠고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를 삼일 동안 기다렸다. 주말이 낀 삼일 간 자가격리를 했다. 길고 지루한 삼일이 지났다. 전쟁같이 지나간 날이었다. 가지가 많지도 않은 우리집 나무에 왜 이리 바람이 많이 부는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매일 뉴스에 매달려 전세계의 상황을 주시했었다. 뉴스를 볼수록 공포심은 더해지고 한마디로 맨붕상태가 되었다. 내 고향에서 확진자가 쏟아지니 진심 걱정이었다. 좁은 대구바닥에 수많은 확진자가 휩쓸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밖에서 생활하는 남편이 걱정이었다. 그때는 그것만 걱정이었다. 저렇게 허무하게 갈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진짜 하루 앞 일도 알수 없는 게 사람인 모양이다. 그래서였다. 아들이 아프니 그 공포심에 심장이 오그라 들었다. 더 이상 단순한 상황은 없다. 팬데믹이고 뭐고 그런 건 하다도 걱정이지 않다. 나는 다만 아들과 살아 갈 날이 걱정이고 자꾸 아픈 아들이 걱정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을 보고 화들짝 한다. 아들과 나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무시무시한 병. 아마 꽤 오래 앓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