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이다.
남편을 보내고 울지 않고 보낸 첫 날,
내 의도와 상관없이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하루가 멍하게 지나가는 날들이었다. 악마의 숫자 6, 66일이 된 오늘, 나는 드디어 조금씩 마음을 추스리나보다. 그렇게 짐작했다. 이런 날도 오기는 한다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했다. 사실 바쁘게 움직이느라 잠시 허리도 펴지 못했다. 덕분에 잊혀진 것인지 내 감정이 아주 조금은 무디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버텼다. 잘 버텼다. 이렇게 조금씩 변하다 보면 좋은 남자, 내 인생 최고의 그 남자를 아름답게 포장해서 추억할 수 있겠지?
어제까지는 이러다가 평생 행복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그리고, 바빴지만 감정이 조금 평온해지는 듯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나의 착각이었다. 아들의 하교 후 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억울한 일에 휘말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며칠 만에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교복도 갈아 입지 않고 낙담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다. 외출 후 아들보다 조금 늦게 집에 들어 온 나는 소파에 누운 아들을 보고 뭔 일이 있음을 한 눈에 알아 보았다. 저럴 때는 남편과 똑같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아들은 계속해서 일을 만들고 있었다.
바른생활 맨인 아들은 걸음을 떼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릎 한 번 다친 적이 없었는데 최근 손가락이 부러졌고 다른 쪽 손을 다쳐왔다. 손에는 소독약을 많이 써 습진이 걸려 곳곳에 갈라지고 피가 난다. 감기는 쉬 낫지 않고 며칠째 골골거린다. 학교의 표창장은 대부분 아들 몫일 만큼 반듯한 아이였다. 그런데 오늘 코로나 검사 후 모처럼 등교했던 아들이 전한 말은 충격이었다. 작년 반 아이들이 한 아이를 왕따 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아들은 같은 반이었다는 이유로 겁을 먹고 있다. 아이는 사색이 되었다. 본인 성정으로 이런 일은 용납이 안 되는 아이다. 징계라도 받게 된다면 학교를 그만두겠다며 울먹인다. 괜찮다고 아주 가끔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억울한 일들도 있다고 기다려 보자고 위로했지만 사실 나도 울고 싶었다. 겨우 두 달, 남편이 떠난 지 겨우 두 달 동안 참 많이도 흔들리고 힘겨운 아들이 내 곁에 있다. 아들 앞에서 강해야 하니 오늘은 절대 울면 안된다. 아니 화도 나고 걱정이 앞서니 눈물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였다. 오늘은 남편 때문에 울지 않은 첫날이 되었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들이 조금 들떠서 방에서 나왔다. 친구들과 대화를 했는데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오랜만의 등교로 정확한 상황을 몰라 오해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며 안도의 미소가 아이의 얼굴에 가득하다. 좋은 경험했다고 다음부터는 조심하겠다고 한다. 사실 그 상황에서 아들이 무슨 조심을 한단 말인가? 친구들이 한 아이를 놀리는데 같은 교실에 있었다는 이유로 휘말릴 뻔한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건지 사실 부모지만 얘기해 주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오늘은 아들 때문에 다시 심장이 철렁했던 날이다. 아무일 아니어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혹시 문제가 커졌다면 과연 나는 견뎌낼 수 있었을까? 현명한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안도하며 하루가 지나갔다.
아들은 성정이 아빠를 닮아 부드럽고 불합리를 용납할 줄 모른다. 길에서 백원 동전 하나를 주워도 제 주머니에 넣지 못하는 두 남자이다. 매사 조심스러워 잘 다치지도 않고 결벽증이 있어 쓸고 닦고 다듬는다. 엄마를 따라 다니며 봉사활동도 오래 했다. 아마 제 또래 아이들 중 단연 높은 봉사점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재활원 봉사도 재밌다고 다시 가자고 했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학폭에 연류 될 수도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충격이었고 저는 또 얼마나 억울할까 싶다. 어릴 때 조카와 싸워 맞아서 울면 이모들이 때린 아이를 잡고 너도 때리라고 기회를 준다. 그럼 아들의 말이 가관이었다. "안돼. 내가 때리면 ○○이 아프잖아." 그 말을 들으려고 이모들이 장난을 많이도 쳤었다. 그런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초등2학년 때 같은 반의 한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다. 집요하게 아들을 괴롭혔는데 특히 아빠가 선물한 물건을 망가트리고 화장실에 가두고 불을 끄는 등 지능적인 괴롭힘이 있었다. 아들과 나는 소통이 잘 되는 편이라 일찍 상황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해결이 빨랐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때 그 아이 부모의 태도에 놀랐던 게 기억난다. 평소 학부모 모임에서 잘 알고 있었고 모범생인 우리 아들이 마음에 든다며 학원도 같이 보냈었다. 그랬던 사람이 막상 자기 아들이 누군가를 괴롭힌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반응이 놀라웠다. 나더러 아들을 너무 포시랍게(호강스럽다는 경상도 사투리이다) 키운다는 거였다. 적반하장. 그래서 나는 그걸로 얘기를 끝내고 아들 옆을 철저히 지켜 주었다. 하교 후 교문 앞에서 아들을 기다렸고 특히 그 아이에게는 지켜보고 있다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학원은 모두 보내지 않았다. 그때 남편은 사실을 알고 나서 큰소리 한번 내지 않던 부드러운 남자가 노발대발하며 그 집에 가자고 흥분했었다. 그리고 해결된 후에도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결국 이사를 했다. 물론심리 상담도 받았다. 그는 그런 아빠였다. 나는 과연 그 아빠처럼 해 줄 수 있을까? 아들은 그런 아빠를 잃었다.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다시 우울하다. 어제의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반 전체가 문제가 되었단다. 몇 명이 선생님께 불려가니 분위기가 어수선한 모양이다. "엄마 어쩌지?" 하며 울먹이는 아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아들이 억울하겠다 싶지만 어쨌든 방관자의 위치도 죄를 비껴 갈 수는 없는 일이라 기다려 봐야 한다. 앞으로 진행될 일이 걱정이었지만 나는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다. 그나마 폭력은 일어나지 않은 것에 위안을 삶는 중이다.
밤새 뒤척이고 잠이 들지 못한 아들이 결국 새벽 일찍 일어났다. 아침 잠이 많아 수십 번을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이 일찍 일어났다. 이건 기적이 아니라 또 다른 불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파한다. 불안하고 초조해 보인다. 엄마의 위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빨리 원만한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겁 많은 아들이 더 이상 두려움에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막막하기만 하다. 아들은 아빠에게 배운 것처럼 엄마를 보호해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더 미안하고 답답하다.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할 오직 한 가지 이유.
그것은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