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써지지 않는다.
감정이 고갈된 걸까? 눈물이 말랐나?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뇌가 마비 되었나? 눈물과 슬픔의 과잉에 의한 일시적인 고갈인건지도 모르겠다. 정확하지는 않다. 그냥 쓰는 것이 멈춰졌다. 머리속도 흐릿하다. 슬픔을 자꾸 끌어 올리고 싶지도 않다.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져 나오던 감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없었던 손이 갑자기 마비된 듯 글쓰기를 멈추었다. 마치 급 브레이크를 밟아 덜컹이는 자동차처럼 멈추었고 몸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뼛속에 마지막 남은 기운 한 방울까지 쥐어 짜 모두 써 버린 느낌이다. 모든 에너지는 고갈되었다. 머리에도 심장에도 감정은 담기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기는 했었나 싶도록 그동안 미친듯이 써대던 활자가 꿈만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도 태도도 정하지 못하겠다. 모든 것을 의지와 상관없이 멈춰야만 했다. 아직은 정리해야 할 일이 휴대폰 메모장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씩 지워 나가야 하는 그 일들이 지워지지 않고 멈춘지 2주일이 되었다. 그렇게나 지난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2주 후에는 신체가 제동을 건다. 멈춘 줄도 모른채 소파에만 의지하고 있던 나는 멍청하게 시간을 보냈다는 자각이 들며 깜짝 놀랐다. 내가 메모장을 열어 감정을 배출하던 글쓰기 조차 멈추고 말았다. 일시적인지 장기전이 될지 모르는 멈춤을 즐기지도 못한다. 잠시의 휴식을 참 좋아했었는데 지금의 멈춤이 겁이 난다. 일어서지 못할까 두렵다.
호흡이 쉽지 않아 숨은 몰아쉬던 시간이 멈췄다. 급 브레이크에 걸려 떨리던 몸체가 멈추지 않는다. 보일러 온도를 높여 보아도 옷을 껴 입어도 소용이 없다. 침대에 온도를 최대한 높이고 이불을 둘둘 감싸고 누웠다.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 죽은듯이 몇 시간을 잠만 잤다. 식은 땀이 줄줄 흘러 온 몸이 젖었다. 눈을 뜨니 몇 시간 전과는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바뀐 건 없는데 이상하다. 멍한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려 본다. 몸을 일으켜 이방 저방을 살핀다. 아들도 제방에서 잠들어 있다. 아! 그렇구나. 아빠를 보낸 후 아들은 계속 잠만 잤었다. 나는 공부하기 싫은 일종의 도피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사실 도피는 맞다. 슬픔에서 도피 중인 아들이 보인다. 진이 빠져 미친듯이 자고 일어나 보니 알겠다. 아들도 나도 살기 위해 신체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을 보내고 살아 보겠다고, 몰아치는 일을 처리하며 바삐 움직였고 쉬지 않고 나를 다그쳤다. 힘을 내야 하겠기에 더 몰아 붙였다. 결국 그래서 였던가? 신체는 자가 치료를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몰아 쉬던 호흡은 기어이 혼수 상태가 되었다. 추위에 떨던 몸의 떨림은 식은 땀과 함께 사라졌다. 이런 일련의 멈춤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끝내 슬픔의 막바지에 다달았고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서라도 살아야 했고 살려야 했다. 살아서 의무를 다 해야 한다. 아마도 조금 전 나에게 씌어진 호흡기는 아들이라는 이름의 호흡기일지도 모르겠다. 숨쉬기가 조금은 쉬워지고 있다. 나는 곧 호흡기도 떼고 활발하게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끝내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라도 잠시 멈춰 쉬어야겠다. 쉼을 누린 뒤 내가 맡겨진 삶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이미 고갈된 감정의 충전을 위해 지금의 멈춤을 잠시만, 아주 잠시만 즐겨야겠다. 너무 지쳤으므로, 진짜 숨 쉬는 것이 너무 힘들었으로 그러므로 멈추어 누웠다. 천장만 바라보며 생각도 물리고 호흡만 느끼며 호흡만 생각하고 감각을 다시 찾을 것이다. 나 그래도 되지 않을까?
계속 잠만 자는 아들이 걱정되지만 일단은 내 호흡을 바로 잡고 그런 뒤 아들을 안아 주고 깨워서 함께 호흡하는 방법을 찾아 보아야겠다. 일단은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