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는

by 완뚜

겨울이 유난히 춥다.

우리 가족의 즐거운 행사가 가득한 겨울을 참 좋아했었는데 이번 겨울은 견디기가 힘겹다. 가을에 남편을 보냈다. 곧 돌아온 겨울에는 행사가 줄을 지어 다가왔다. 결혼기념일, 아들의 생일, 내 생일, 그러다 맞는 봄엔 또 남편의 생일이 기다리고 있다. 몰아치듯 돌아오는 가족행사는 어느 것 하나도 즐거워 할 수 없었다. 유난히 춥고 아픈 겨울이다. 그가 없어 아프고, 슬퍼서 불행하다. 행복하고 싶었다.

아들의 생일이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라는 동안에는 모자람없이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 세상 제일 즐거운 날이였으면 했다. 그런데 아들의 인생은 두 달 전, 크게 금이 갔고 날씨가 추워지며 금간 곳이 벌어지고 있다. 점점 균열이 커지고 아이는 눈에 띄게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어떻게 어루만져 줘야 할 지 모르는 바보같은 엄마는 난감하다. 아이에게 위로를 보내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냥 꼭 안아 주면 될까?

아빠없는 첫 생일, 둘만 보내는 이런 날이 외로울까 봐 이모들을 소집했다. 간단하게 나마 생일파티를 준비 중이다. 조카들은 편지를 쓰고 선물을 준비하고 이모들은 음식과 케잌을 준비한다. 고마웠다. 조카를 위한 그들의 배려는 아들의 생일이라는 내 한마디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모자는 그래도 둘만 남겨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다.

아들과 나는 하교 길에 만나 부러진 손가락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갈 예정이었다. 그 후 외갓집에서 저녁파티를 할 것이고 내일은 삼촌을 만나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형을 보낸 뒤 남은 조카가 안타까운지 처음 내미는 손이다. 다들 아들을 걱정하는 중이다. 이제야 조금씩 아들의 아픔을 깨닫기 시작한 내가 오늘 해야 하는 역할은 즐거운 척 연기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쉽지 않은 나의 역할이다.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기다리는 중에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작년 반 아이들 문제로 소집되었으니 일정 차질이 있더라도 양해를 부탁하는 문자 메시지였다. 학폭과 관련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아이들 문제 때문인듯 한데 나는 하필 오늘 소집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걱정으로 자리를 뜰 수가 없어 한 시간을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 교문을 나오는 아들의 얼굴을 살핀다. 예민한 아들은 최근 마음고생으로 살이 많이 빠졌다. 헬쑥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다행히 표정은 평온하다. 작년에 있었던 일을 목격자로서 사실대로 종이에 적어주고 왔단다. 정황을 들어보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 병원은 시간이 늦어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코로나 검사 이후 시간이 맞지 않아 이주일째 병원에서 부러진 뼈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생일파티를 위해 외갓집으로 향했다. 이미 모두 모여 있다. 들어서는 아들에게 조카가 초코렛을 내민다. 생일 선물이라는데 쵸코렛이 먹고 싶어 빨리 준 거라며 나눠 먹자고 한다. 아들이 귀여운 짓을 하는 동생들을 보며 활짝 웃으며 방으로 들어간다. 힘들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저녁을 먹고 케잌을 꺼내 생일파티를 했다. 대식구의 축하를 받고 선물과 금일봉도 받았다. 아이는 많은 축하를 받으며 하루를 지냈다. 오늘, 예상과 달리 아빠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족들 덕분이다.

주말 아침, 아들의 생일 다음 날, 미리 예약해 둔 진학 컨설팅을 위해 이른 아침 학교에 도착했다. 긴장한 모자는 조심스럽게 담당 선생님 앞에 앉았다. 30분 가량 주어진 시간에 상담을 받았다. 선생님은 시종일관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며 진행한다. 마치고 나오는 길, 문앞까지 나오신 선생님이 아들을 안듯이 어깨를 두드려 준다. 힘내고 열심히 하라는 다짐도 한다. 느낌이 이상하다 싶더니 마치고 나온 아들의 입에서 내 생각과 같은 말이 나온다. "엄마, 저 선생님이 아빠 돌아가신 걸 아는 것 같지?" 그랬다. 우리는 배려깊은 담임 선생님의 언질이 있었지 않았겠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람들의 진학지도 상담의 경험을 전해 들었을 때, 혼이 좀 날 줄 알고 각오하고 왔는데 의외로 편안하게 지나갔다. 숨겨진 배려를 너무도 잘 알아 본 우리는 작은 해프닝처럼 웃어 넘겼다. 이미 이런 배려가 우리 모자는 익숙해졌다.


곳곳에서 배려의 흔적을 발견한다. 예전과 달라진 삶, 주변인들에게 신경쓰이는 존재, 그것이 우리 모자인 것만 같아 조금은 슬프다. 우리 가족은 모두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품이었다. 그것도 달라진 지금의 상황에서는 의미없는 일이다.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나 우리를 신경쓰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불편하고 조심스럽다. 잘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주목받는 시선에서 자유롭게 잘 할 수 있을까? 고마우면서도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조용히 둘만 견뎌내는 건 어려운 일일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힘들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마음이 여러갈래이다. 그래서 더 정신을 못 차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리석어 마음에 한가지 이상 담지를 못한다. 한가지가 마음에 담기면 다른 건 돌아 볼 여유를 갖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나마 최근에 생긴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아들을 챙겨야한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사이 아들이 중요해진 건 큰 변화이고, 덕분에 남편을 조금씩 놓아주는 중이다. 그래야 아들이 보일 것이고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