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가 풀렸다.
심장만 빼고는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느낄 수도 없었던 지난 시간이 마치 꿈 속인듯 흐릿해졌다.
아이의 고통을 목격한 후였다.
진통제를 처방받은 병자처럼, 혹은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한 앉은뱅이처럼 순식간에 마비가 풀리고 심장이 뛰며 눈이 환해졌다. 그리고 내 눈과 심장과 머리에 아들이 담겼다. 미안했다. 정신을 놓고 있던 하나 남은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보며 무서웠을 아들이 보였다. 정신이 들고 감각이 돌아왔다. 이제야 눈물이 흐르면 왜 흐르는지 이유도 생각이 났고 화가 나면 왜인지, 웃음은 왜 나는지 모든 것이 느껴졌다. 긴 진흙탕에 갖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다가 구출된 느낌이다. 영원할 것 같은 암흑이 사라지고 몸에 힘을 주고 이겨내야 할 이유가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은 잃고 있던 이성의 끈을 다시 당겨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몇 주 동안은 의미없이 행했던 걷기였지만 이제 의미가 바뀌었다. 나는 살아야 한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살아야만 한다. 조금만 늦었다면 아들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소름끼치는 생각이 든다. 함께 의지하고 다독거렸어야 하는 건데 나의 이기심에 아들은 혼자 곪고 있었다. 미안했다.
어느새 아들이 내 머리속을 조금씩 차지한다. 덕분에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숨을 쉰다. 멈추었던 호흡을 크게 한번 내지르고서야 규칙적인 숨쉬기가 가능해졌다. 나는 남편과 함께 묻었던 영혼을 끌어내 예전의 나를 만들기 시작한다. 아니 더 강한 나를 만들기 시작한다.
아들이 보이고, 남편이 영원히 떠났음을 인정하자 마음은 차분해진다. 인정하기까지가 어렵고 힘들었지만 인정한 후는 비교적 차분히 받아들여졌다. 아직 심장은 아리고 병이 나 있지만 그래도 미련스러운 눈물은 줄었다. 그가 그립지만 추억으로 기억하려고 몸부림친다. 잊는다는 것이 그를 버리는 것처럼 죄책감에 쌓여있던 나의 마음도 다독이며 슬픔의 감각은 잊어야 살아 갈 힘을 얻기에 억지로 기억에서 밀어내는 중이다. 아무거나 집중할 일을 찾고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고개 숙이고 바닥만 바라보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기 위해 보란듯이 치켜든다. 죄책감을 내려놓기 위해 아들이라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내며 스스로를 설득 중이다. 이렇게라도 노력하다 보면 상처의 흔적만 남고 아픔은 없어지겠지. 그렇겠지? 이렇게라도 하고 있는 내가 기특해서라도 벌어졌던 상처가 아물고 흔적으로 자리잡겠지. 그러면 되는 거다. 그러면 아들과 나는 살아남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