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싶은 주말이다.
어리버리하게 대답한 것 같았던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 떨어졌겠구나 싶었다. 그런데도 취업사이트에 접속할 생각은 들지 않았고 사무실 출근 복장을 인터넷으로 검색했었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 피식 웃음이 났다. 소파에 기대어 휴대폰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중이었다. 낯선 번호의 벨소리에 순간 철렁했다. 결과는 언제 알게 되냐고 물었을때 떨어지더라도 연락해주겠다고 했던 면접관의 말이 생각났다. 전화 속의 다소 망설이는 듯한 음성에 다시 덜컥하던 심장은 화요일부터 출근가능하냐는 질문에 제자리를 찾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전화를 끊고 그동안 마음 졸인 친정 식구들과 친한 지인들에게 합격 소식을 알렸다. 축하를 받으며 왈칵 눈물이 났다. 하느님은 우리를 절대 버리시지 않는구나. 나를 위해 길을 준비해 두셨구나 싶어 기쁨의 눈물이 났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살았구나. 이렇게라도 살게 되었구나. 아들을 위해 조금의 몫은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싶어서 행복했다. 참 오랜만의 안도였다. 내리막의 끝에 당도했으니 이제 조금씩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나? 작은 희망이 꿈틀댄다.
가족들의 미소를 보았다. 큰 불행 뒤 찾아 온 작은 기적에 행복했다. 합격소식을 듣자 제일 먼저 남편이 생각났다. 당장 출근하기 시작하면 자주 찾아가지 못할 것 같아서 남편에게 가고 싶었다. 남편이 알면 많이 기뻐 할 텐데. 잘 했다고 칭찬해 줄 텐데.
월요일 아침, 납골당으로 향했다. 어느때 보다 마음이 가볍다. 작은 언덕 하나를 넘은 기분이다. 이제 걱정 말라고 전하고 돌아왔다. 납골당에서 울지 않은 첫날이다. 남편의 아파트는 여전히 날씨가 화창하고 볕이 따사롭다. 좋은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어 정말 열심히 살던 남자의 조그마한 아파트는 경치와 날씨만큼은 최고다. 어제밤 내린 비가 무색하게 갈 때 마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먼 풍경은 아름답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이라는 가사가 저절로 흥얼거려질 만큼 일품이다. 내 마음도 덩달아 따스하다. 그에게 당당히 자랑하러 오게 되어 좋다. 이제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돌아설 수 있어 진짜 다행이다.
첫 출근길, 걱정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하다. 얼마만의 희망인가.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간의 공포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었는지 잘 알게 되었기에 이제는 최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감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긴장한 나머지 일찍 도착했다. 첫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서둘렀더니 사무실 밖에서 꽤 오래 기다리게 되었다. 일은 쉬운 것부터 배웠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분위기도 편안해 보인다. 일반 회사가 아니라 근무 시간이 길다.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시간이 주된 업무 시간인 성당 사무실은 낮 시간에 여유가 있다. 낮의 쉬는 시간에는 보통 집으로 돌아가 쉬거나 개인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집까지의 거리가 있어서 기름값을 아낄 요량으로 집에 다녀오지 않았더니 몸이 힘들다.
일정을 모르고 출근한 첫날, 퇴근 시간이 늦어 아들의 저녁 식사준비를 하지 못했다. 혼자서 밥을 찾아 먹는 것도 해 본 적이 없는 아들을 혼자 뒀다는 죄책감이 스멀거린다. 저녁 미사가 끝나고 뒷 정리 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혼자 있을 아들 생각만 머릿 속을 가득 채운다. 신경이 쓰였다. 이제 아들과 함께 나란히 식사하는 게 앞으로 몇 번이나 가능할 지 모르겠다. 미안하고 속이 상했다. 남편을 보내고 그나마 깔끔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경쟁률 높은 성당사무실에 무사히 입사했다. 그런데 아들이 문제다. 퇴근이 늦고 주말 근무가 길어서 이제 아들의 식사 준비가 문제가 되었다. 식사도 그렇지만 온종일 혼자 있을 아들이 눈에 밟힌다. 퇴근 후 돌아오는 길, 쏟아지는 눈물이 무안해 딴청 부리며 눈물을 훔친다. 이럴 땐 또 남편이 원망스럽다. 그의 죽음으로 아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혼자 잘 버텨주어야 할 텐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비뚫어지지 않는 아들을 한 번 믿어 봐야겠다.
쉽지 않은 취업의 관문은 무사히 넘겼으니, 이보다 다행은 없겠지. 비록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파이팅이다. 나는 결국은 잘 해낼 것이다. 언제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