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 즐겁다. 잘난 척 여러 봉사활동을 하며 바삐 살았지만 언제나 직장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봉사도 좋지만 고생해서 시간을 투자한 것에 대한 댓가 있는 삶을 조금은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남편이 힘들게 벌어 준 돈을 쓰고 다니는 나의 일상이 민망하고 미안해서 되려 남편에게 큰 소리치며 살기도 했었다. 단지 직장을 구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 욕구를 외면하고 살았을 뿐이다.
사무실 앞, 보안을 해제하는 소리가 정겹다. 키를 돌려 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에 긴 호흡을 해 본다. 사무실 환기를 시켜 두고 성전으로 향했다. 성체 앞에서 짧은 기도를 올린다. 출근 후 나의 루틴이 된 일상이다. 기도 후 시작하는 사무실 생활은 양치를 마친 입안 마냥 상쾌해진다. 처음 배우는 시스템도 신기하고 친절한 어르신들의 관심도 좋았다. 도심 속에 있는 규모 큰 성당이지만 분위기는 시골스럽다. 아마 오래된 성지로 신심 깊은 어르신들이 많아 그런듯 하다. 사무실 청소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집에서 준비해 온 커피를 마시는데 사람들이 하나씩 보인다. 창문을 통해 성전으로 가는 사람,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 순교성인들의 사진이 붙은 벽에 허리 숙여 인사하는 사람도 보인다. 제 각각 나름의 방법으로 예를 다하고 기도를 한다. 한가하면서도 정겹다. 작은 행복감이 밀려온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이 곳이 내 인생 마지막이자 정년까지의 내 자리라는 최면을 걸고 적응을 위해 애정을 찾아내는 중이다.
이곳에서는 직장 스트레스 없이 살자고 마음먹은 터다. 예전에는 직장이란 곳이 할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다녀야 했던, 그래서 내 취향과 적성은 존중되지 않았던 곳이라 치부하며 지긋하게 여겼다. 사실 생존을 위한 목적은 지금이 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더 행복하다. 절박함이 만들어낸 만족감일 수도 있다. 수십 년의 사회 생활은 어느덧 나를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만들었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만들고 있다.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파생효과를 여러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을 보내고 절망적인 공포를 느끼면서도 어찌 될 것이라는 한가닥의 희망은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미미한 희망이라 답답하긴 했지만. 하여튼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까지 내가 걸어왔던 비교적 쓰잘데기 없다고 여겼던 교우관계와 봉사의 탈을 쓰고 즐겼던 수많은 놀이들이 지금의 내가 되었고 어려운 시기에 길을 만들어 냈다. 나는 도전 한 달 만에 직장을 찾아냈다. 당당히 자랑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남편은 잠시 뒤로 하고 이 순간을 즐겼다.
직장 생활은 사실 녹녹지 않다. 30분 가량의 압박면접에 기진맥진했었다. 그때 느꼈었다. 힘든일이 되겠구나. 면접관들의 태도는 시종일관 어렵고 힘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합격 통보를 받고 덜컥 겁도 났다. 잘 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의 봉사와는 완연히 다른 정신상태로 접근해야 하는데 과연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복잡한 감정은 울면서 웃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며 시작한 직장생활은 말그대로 직장이다. 주는 만큼 뽑아 먹어야 하는 직장. 비록 그곳이 종교시설 일지라도 다르지 않다. 다만 내가 달라졌을 뿐이다. 절박함으로 무장한 나는 물러설 수가 없다. 눈치도 조금은 봐야 하는데 수십 년 멋대로 살았던 나는 그게 제일 어렵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대학교는 고등학교 졸업후 직장생활해 본 사람이 진학할 수 있는 법을 만들면 필요와 적성도 고려해서 과를 선택할 것이고 열심히 학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이상한 생각을. 그런데 직장도 그렇다. 절실하게 찾아서 간 직장은 더 애착이 가고 최선을 다 하게 되는 것 같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일수록 불만의 가짓수도 적지 않을까? 아직 며칠되지 않아 늘어놓는 실 없는 소리 일지도 모르지만.
신자분들은 대부분 나이많은 어르신들이다. 그 말은 내가 거들어 드려야 할 서류 업무가 많다는 의미다. 대신 그동안 내 스팩으로 쌓여있던 뻔뻔함으로 그들에게 접근하고 친절할 수 있었다. 비교적 순항 중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바로 출근하면 거의 한 시간 가량 일찍 도착한다. 그래도 조금 늦게 출발하면 길이 막히니 일찍 오는 길을 택했다. 내 루틴대로 잠시 성전에서 기도 후 청소를 하고 새로 배우기 시작한 일을 복습하면 금방 업무시간이다. 사무실에 드나드는 성직자와 신자를 대하다 보면 하루가 너무 짧다. 중간중간 생기는 여유시간에는 성당을 한바퀴 돈다. 넓어서 운동도 되고 공기도 도심답지 않게 좋다. 순교자의 묘지도 한바퀴 돌고 성모당도 한바퀴, 주차장도 한바퀴 그렇게 돌고 사무실 쪽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운동의 탈을 쓴 산책은 막바지에 이른다. 숨이 조금 차 오르기 시작할 무렵 사무실에 도착, 의자에 앉으면 라지에이터에서 발산하는 열로 데워진 공기에 몸이 녹는다. 사실 나의 예전 직장은 모두 성냥갑 건물 안 사무실이 전부였다. 이렇게 산책을 겸한 걷기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은 고되다. 의자가 있어도 무의미하다. 할머니들의 서튼 글씨를 대신해 써 주거나 빈칸 채우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연신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또 성전으로 여러 번 뛰어 다녀야 하니 저절로 부지런해지고 건강해지는 중이다. 사실 수능 전이라 코로나 확산을 막기위해 전면 온라인 수업을 시작해 집에서 지내고 있는 아들이 걱정된다. 그래도 이제 마음을 내려 놓으려 애쓴다. 다행히 점심시간부터 몇시간의 여유가 있어 집으로 돌아가 아들과 점심을 먹고 저녁까지 준비해준 후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으니 어찌보면 일반 직장보다 좋은 편이다. 다만 내 몸은 휴식의 여유가 없을 뿐이다. 주일은 많이 바빠 종일 사무실에서 지내야 해 아이를 살필 겨를이 없는 것이 조금 걸리지만 그것도 나름 적응 중이다. 나에게 최상의 직장이다. 그렇게 마음 먹으니 아쉬울 것도 불만도 없다. 나는 잘 적응하고 있고 잘 해 나갈 것이다. 아직은 갈팡질팡 서툰 일 머리에 난감하지만.
지금 나는 어느 때 보다 감사하고 만족스럽다. 나는 역시 재수없는 여자보다 행복한 여자가 어울린다. 아마 하늘 나라에서 나를 보며 그가 말하겠지.
"잘하고 있네, 기특하네."
일요일, 새벽 출근하는 길, 피곤해 눈이 떠지지 않는다. 어두운 새벽길을 달린다. 한산해 무서울 지경이다. 이렇게 이른 시간 할머니들이 꽃단장을 하고 성당 마당을 걸어 오겠지. 빨리가서 사무실 환기부터 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