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보낸 후였다. 그의 흔적을 찾고 추억을 되새기다 보니 그와 만난지는 며칠이 지났는지, 그와의 결혼생활과 이별은 또 얼마나 되었는지 계산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가 없는 하루는 참 지겨웠는데 살아왔던 18년의 세월은 너무나 짧다. 그 남자의 스웨터를 발견하면 옷의 내력을 더듬었고 흘려 쓴 종이 조각을 발견하면 손으로 쓰다듬으며 펜을 쥔 손을 기억한다. 아이가 아프면 걱정 가득했던 그의 미간이 생각나고 아이를 걱정하며 내게 요구하던 잔소리를 그리워 한다. 나는 이제 잔소리마저 그리워하며 집착하는 중이다. 한가지 더, 최근 나의 뇌는 특정 부분에서만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남편에 관한 기억을 담당하는 어떤 부분에서 만.
하늘이 한껏 찌푸린다. 어젯밤 내린 비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먹구름이 이동 중이다. 몰려가는 구름 사이로 빼꼼히 여명이 시작된다. 구름은 하트모양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면접 다녀 올 아내를 위해 남편이 보내 주는 메시지 같아 가슴이 설렌다. 나는 그런 여자다. 작은 흔적을 찾느라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 집착의 아이콘.
모처럼 성당에 나왔다. 자가격리 이후 첫 외출이다. 잊은 줄 알았는데. 미사 시간 내내 남편의 흔적을 찾는다. 사실 남편은 이 성전에서 미사를 드린 적이 없다. 마지막 길에 관안에 누워 저 제대 앞에 잠시 다녀간 것이 모두이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고 있다. 관 옆에서 울던 나와 나를 감싸고 있던 동생들의 환영이 보인다. 나는 이렇게라도 그를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걸어 들어와 나란히 미사를 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그는 누운 채 잠시 다녀가며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조금씩 기억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바삐 움직이다보니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또 그에게 미안하다. 중압감이 조금 줄어 들었고 추억은 아름답기보다 안타깝다. 그가 준 배려와 사랑이 아직도 아쉬워 억울하다. 더는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아프다. 그를 잃은 슬픔보다 억울함 때문에 나는 미련을 떠는 중이다.
익숙해지고 있다. 그가 없는 안방에서 잠 드는 것이 미치도록 불편했는데, 이제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 더는 사용하지 못하는 그의 수저를 꽂이에서 발견할 때마다 아팠던 마음도 무뎌졌다. 그렇게 우리는 익숙해져 가는 모양이다. 아직은 아들과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힘겹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편안해지겠지? 남편의 부재와 함께 늘어난 시댁의 관심에도 그가 생각난다. 이런 관심조차 남편의 부재를 확인시킨다. 관심이 부담스러워 그가 생각나는 나는 끝까지 이기적인 아내이다. 이기적이라서 미련을 떨며 기억 속에서 그를 놓지 못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꾸 그의 흔적을 찾는다. 이미 사라진 그의 체향과 그의 물건을 그리워하며 천천히 치울 걸, 조금 더 옆에 둘 걸 후회한다. 작은 흔적에 집착하느라 그의 가장 큰 흔적인 아들은 잊고 혼자 슬픔에 빠져 있다. 그가 떠난 지 두달 하고도 칠일이 지났다. 혼자 아파한 아들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나쁜 아내였고 바보같은 엄마였다. 실패다. 어느날 문득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잊고 있었다. 아직은 예민하고 약한 아이라는 사실을. 이제라도 아이를 보듬어야겠다. 늦었지만 늦지 않았기를. 그래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남편에 대한 집착은 마음속에 넣어 두어야겠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납골당에서 혼자 있는 남편이 보고 싶고 걱정이 된다. 남편에게 다녀오지 못한지 13일이 되었다. 13일이라는 날은 아직은 너무 긴 시간의 날이다. 그래서 또 남편에게 미안하다. 자꾸만 아프고 회복도 더딘 아들의 건강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걱정이 늘어나고 있다. 아빠에 이어 아들에게도 집착하는 여자가 되어가는 중이다. 잠시만 아들에게 집착해야겠다. 그 아이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