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당찬 여성으로 살아 왔다. 어디서든 말빨로 지지 않았고 모르는 것이 생기면 밤을 세워서라도 책과 정보를 파고 들어 겉핡기라도 아는 척을 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지능적으로 하지도 못했으면서, 나이들어 눈치만 빨라지고 필요한 것만 가려내는 능력이 월등해져 가려낸 것만 배우려 한다. 나서기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바보 취급 당하고 싶지 않았고, 무시 당할까 두려웠던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그리도 두렵고 자신도 없었는지 스스로 눈치도 채지 못했던 비루한 여자일 뿐이었다. 이제야 다 부질없음을, 뒷통수 세차게 한방 맞고야 깨달았다.
차를 운전하고 다니며 세상을 구경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예전 선배가 카레이서를 해 볼 생각 없냐고 권했을 만큼 운전을 즐기고 잘 하기도 했었다. 물론 나이와 함께 감각이 무뎌지는 나를 알아가며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차에 혼자 앉아 돌아다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 생활을 위한 출퇴근 길은 언제나 대중교통, 버스를 이용했다. 마침 내가 타야하는 버스는 시외버스정류장을 거치는 노선이었고 어렵게 자리를 차지해도 두 정거장을 채 앉아 있지를 못했다. 바리바리 보따리를 든 할머니들이 어찌나 많이 타고 내리는 지 몇 달뒤 부터는 빈자리가 눈에 들어와도 앉지 않게 되었다. 비교적 풍족했던 집안 형편 덕분에 대학 생활 중에도 버스는 자주 타지 않았다. 늦게까지 놀다가 택시로 귀가하거나 아빠의 차를 빌려타고 다니던 철부지 공주님이었다. 졸업 즈음 아빠의 사업 실패로 울며 겨자먹기로 취향과는 상관없이 직장을 얻었다. 그곳은 제법 일도 할만 했고 직원들과의 소통도 즐거웠다. 단지 만원버스에 시달렸고 당시 버스에는 젊은 아가씨에게 몸을 비벼대는 미친 인간들이 많았다. 그렇게 당하다보면 내가 만만한가 싶기도 하고 자기 비하가 심해져서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자주 겪던 일이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버스가 싫었다. 둘러 가더라도 일부러 빈 버스를 타기도 하고 궁여지책이 말이 아니었다. 출퇴근 만큼 내 진을 다 빼는 일은 없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회사에서 나오는 업무용 승용차를 받아 출퇴근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복잡한 버스보다 변태아저씨들이 더 괴로웠다. 결혼 이후에는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전업 주부면서도 자동차로 다니는 행운도 누렸으니 나는 평생 버스 탄 횟수를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교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그래도 언제나 불만투성이였었지. 호강에 겨워 정신이 없었던 때였다.
늦은 나이에 다시 얻은 직장은 놓칠 수 없다. 내 삶의 새로운 로또가 되어 나타난 곳이다. 첫 번째 로또는 마구 퍼부어주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남편이었다면 이제 두 번째 로또는 노후를 책임져 주는 은근한 혜택이 되어 줄 터이다. 그럼 로또가 아니라 연금복권 쯤 되려나. 그렇게 감사하며 정말 열심히 뛰어 다니는 중이다. 그나마 이렇게 감사할 거라도 생겼으니 삶에 대한 기대도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흡족한 직장생활이지만 퇴근 시간이 되면 신나야 할 나는 금방 기분이 저조해진다. 혼자 차에 올라 집으로 향하다 보면 못견디게 피부가 시려온다. 아프다. 외로워서 아프다. 남편을 보내던 아픔이 최고의 아픔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외로움이 뼈까지 잠식했다. 외로워서 서럽고 외로워서 눈물이 난다. 신호대기중 생각지도 못했던 눈물이 떨어지면 얼른 갈무리를 하면서 주위를 살핀다. 들키지 않았기를 바라며. 집에 도착하면 불 꺼진 집과 슬리퍼 한 켤레만 덩그런 현관이 그렇게 추울 수가 없다. 아들이 집에 없다. 아빠의 부제를 집에서 혼자 견뎌내던, 아들의 힘겨움을 덜어주기 위해 잠시 이모집으로 피신을 보냈다. 그래서 빈집이다. 새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잠시 짐을 내려놓을 요량이었는데 착각이었다. 시간의 여유로 생긴 빈 틈으로 파고 드는 외로움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복병이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만히 지켜보다 장난 걸어오는 남자가 없어서 외롭다. 엄마 안아줘, 하며 달려드는 아들이 없어서 뼈가 시리다. 뭐 먹고 싶냐고 물어오는 남자가 없으니 먹고 싶은 것도 없다. 그와의 카톡을 읽으며 다시 울었다. 오늘은 남편의 휴대폰을 해지하고 돌아왔다. 차마 휴대폰 기계를 처분할 수 없어 하루종일 핸드백에 넣어 다녔다. 빈 집 소파에 앉아 꺼져버린 휴대폰을 가슴에 안고 오열했다.
벌써 보름이다. 혼자 지낸 빈 집이 익숙해지겠거니 하며 버티는데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평생 배워도 모르는 것이 한가득이다. 나는 자주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했었다. 겨우 세식구의 북적이는 소음이 힘겨워 아이가 좀 자라면 휴가를 얻고 싶었다. 한달이든 세달이든 혼자 떠나 지내보는 휴가를 갈망했다. 하느님은 언제나 내편이었던 모양이다. 장난처럼 갈망했던 휴가를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길게 주시다니 말이다. 그런데 차마 감사하다는 기도는 못 드리겠다. 뼛속까지 외로워 보라고, 제발 철 좀 들라고 이러시는 건가? 나는 앞으로 10년이 될지 50년이 될지 모르는 혼자만의 휴가를 얻었다. 그리고 그 휴가 안에서 마음을 혹사시키고 칼질하고 생체기를 내며 버티는 중이다. 사방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적막하고 외롭다. 재미있는 것이 세상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맛있는 것이 모두 없어졌다. 이럴수가.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많은 돈을 써 가며 다이어트라는 숙제를 평생했건만 이 몇달의 삶의 변화로 살이 내리고 내가 변한다. 무료하다. 예뻐질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여자의 감성이 실종되었나? 나는 이 남자가 미워서 계속 미워해야겠다. 금슬좋은 부부를 자랑하는 토닥거림이 보기 싫어서 티브이 시청도 끊어야겠다. 점점 더 할 수 없는 것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늘어가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만 아니면 남편이 있는 시골동네로 가서 전원생활이라도 하고 싶다. 이왕 외로울 바에는 북적이는 도심에서의 외로움보다 조용한 시골의 외로움이 차라리 견디기 나을까? 나는 또 다른 꿈을 계획한다. 이제는 이룰 수도 없는 꿈을. 그의 곁에서 살고 싶다는 이룰수 없는 계획을. 외로우니 생각도 외로워지는 모양이다. 나의 긴 휴가는 시작부터 지치는 중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방방마다 텔리비젼 소음이 넘치고 문을 들락이며 먹고 싶은 걸 요구하는 두 남자가 있던 우리 집으로 간절히 돌아가고 싶다. 꿈처럼 아득하기만한 우리집. 귀한 줄 몰랐던 우리집을 나는 영원히 잃어 버리고, 길 잃은 휴가를 무던히도 버티는 중이다. 버티다보면 맷집도 생길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