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by 완뚜


일요일 낮, 한차례 폭풍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 사라지고 한 숨 돌릴 시간이다. 햇살이 따뜻함을 품기 시작한 봄의 어느 날이었다.


구부정한 허리에 낡은 슬리퍼를 끄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노인이 한걸음 한걸음을 느리게 내 딛는다. 손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지팡이가 들려있고 걸음마다 지팡이와 콘크리트 바닥이 부딪히며 내는 타닥거리는 소리가 엉겨 붙는다. 머리는 희끗하고 온통 헝클어져 있다. 옷은 낡아 구멍이 듬성하다.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할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또 인가?


며칠째 걸인 할아버지들이 돌아가며 다녀갔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선입견 가득한 눈으로 새로운 할아버지를 맞았다. 그들은 때로는 몇 천 원을, 때로는 만원을 받아 챙기고는 사라졌었다. 이번에는 얼마짜리 일까?


웬걸, 할아버지는 교육을 받고 싶다며 전화번호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꽤 긴 시간동안 나는 반성모드를 장착해야만 했다. 그렇게 그 할아버지는 세 번을 더 다녀가셨다. 교육은 시작되었는데 전화기를 잃어버려 연락을 못 받았다고도 했고 어느 날은 미사를 방해하며 지팡이 소리 요란하게 마당을 거닐기도 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정성이 보기 좋아 흐뭇하기까지 했고 외모로 판단했던 나를 꾸짖으며 반성했다.


주일 낮, 일주일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 시간이다. 몇 번을 다녀가며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던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사무실에 잠깐 들러 ‘나 기억하지?’하고 물음만 던지고 나간다. 다른 분들에게 방해될 만큼 마당을 소리 나게 지팡이를 짚으며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행동이 수상쩍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무심하게 지나쳤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남자 분들이 모두 나가고 혼자 남게 되자, 할아버지는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내가 보호관찰대상자 명단에 있는 사람이야. 조심하라고.”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뭐라고 하셨냐고 듣지 못했다고 했더니 다시 똑 같은 말을 내 뱉으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러더니 그런 줄 알라며 한마디를 더 던지고 밖으로 사라졌다.

‘헉, 뭐지 이건.’ 내 판단은 또 다시 틀렸다.


매일 반성하는 중이다. 서투른 판단은 절대 금물. 나는 다시 선입견과 조심성을 장착했다.


온통 꽃을 피우며 화려한 색으로 갈아입은 성당에 순례객의 방문이 잦아졌다. 순교자 성지이다 보니 전국에서 다녀가시는 분들이 많다. 낮 시간에도 이곳은 사람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덕분에 낮 시간에는 낯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다수가 여기저기 살펴보고 사진을 찍으며 보내지만 사무실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사무실에 앉아 그들을 살피는 것도 내 일과중 하나이다.


마당에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멘 젊은 남자분이 보인다. 장거리 순례객의 모습이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더니 사무실로 들어선다. 나는 성전은 저쪽으로 들어가시면 된다고 말을 꺼냈다. 보통 입구를 찾지 못해 사무실 문을 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문만 열고 주저하는 그 분에게 먼저 안내의 말을 했던 건데 말끝에 “그게 아니고요.” 하며 사무실로 들어선다.

“사실은 제가요.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됐는데요.”

‘헉, 이건 또 뭐지. 어째야 하지.’

“그런데요. 배도 너무 고프고 해서요. 요 밑에 샌드위치 가게가 있던데 샌드위치 먹을 정도만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저한테 기념우표가 있는데 이거 다 드릴게요. 제가 가진 게 기념우표와 마스크가 전부인데 마스크를 드리면 제가 할게 없어서요.” 하며 가방에서 기념우표 몇 장을 꺼낸다.

“저는 직원이고 제 돈도 아닌데 마음대로 드리지는 못하고요. 이거라도 가지고 가세요. 우표는 한 장만 주시면 되고요.” 하며 만 원 한 장을 내밀었다. 사실 실랑이 하며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았던 나는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에 내민 지폐 한 장이었다. 그는 눈에 민망함을 가득 담고 굳이 기념우표 두 장을 내려놓는다. 그러면서 “고맙습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게요.” 하며 90도로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며 눈물을 훔친다.


사무실 문에서 멀어지고 있는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멍하게 빈 공간만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빨리 보낼 요량으로 내민 만 원짜리 한 장. 단지, 커피 한 잔 덜 먹으면 된다 싶었고 무서운 것 보다 좋다는 궁여지책의 해결책이었다. 그런데 그는 눈물을 훔치며 90도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열심히 살겠단다.


혼란스러웠다. 일하던 손이 멈추었다. 사실일까? 정말 배가 고팠을까? 어찌되었든 그 사람의 배를 조금이나마 불려줄 수 있었던 거였으면 좋겠다. 나는 요즘 수십 년 동안 배우지 못했던 인생을 몇 달 만에 많이도 배우고 있다. 내가 알고 잘난 척했던 모든 것들이 자만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선입견과 자만으로 똘똘 뭉쳤던 나는 된통 당하는 중이다.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의심할 수도 없는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다.


하루하루가 스팩타클하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될까?

온실 속에서 살던 나는 하루아침에 허물어진 온실을 벗어나 세상에 던져졌다. 그리고 많은 인생을 경험하는 중이다. 매일이 두렵지만 깨달음이 따라오니 인생의 양면성은 어디까지 우리를 시험하게 될까 살짝 기대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