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아하는 비다.
비를 만나면 가슴이 뛰었다. 언제나 그랬다.
바람 없이 적당히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 하루를 상쾌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긴 가뭄에 어르신들이 걱정을 하던 어제와 다르게 오늘의 하늘은 빗줄기를 뿌린다.
더운 여름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시작된 비는 높은 온도로 인해 후덥지근한 날씨를 만들어낸다. 다만 빗줄기의 경쾌한 소리만이 청각을 시원하게 만들뿐이다.
줄줄 흐르는 땀이 아니라 습도를 이기지 못해 은근히 스미는 땀으로 온통 몸이 끈적인다. 선풍기 앞에 앉았다. 기계음에 섞여드는 빗소리가 이겼다.
나는 선풍기 앞에 고개를 숙이고 이마에 맺힌 땀을 식히다 귓전을 파고드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창밖 풍경을 빗줄기가 점령했다. 신록이 연둣빛으로 새 계절의 시작을 알리며 치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비와 신록의 하모니가 환상적이다. 긴 외로움에 고개만 숙이고 살던 나는 잠시 하늘을 본다, 마음만큼 뿌연 회색빛 하늘이 낯설다.
그가 보고 싶다.
요즘 불 멍이 대세란다. 빨간 불꽃을 보며 머리를 비우는 행위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는 비 멍쯤 되려나? 창 너머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멍 때리기를 시전 하는 나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었다. 머리를 비워 낼 요량이었는데 웬 걸, 비우고 있던 머릿속을 그 남자가 채워진다. 당황한다. 빗줄기가 잦아든다. 시선을 내린다.
사무실에서 비 멍 때리기란 사치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비 멍으로 머리를 비운다. 아니 그의 생각으로 머리를 채운다. 오랜만에 만난 만족스러운 빗줄기인 탓에 그로 채워진들 어떨까 싶다. 조금 슬픈들 어쩌겠는가? 요즘 나의 일상이 슬픔인 것을.
아무 말이 없어도 좋다. 그냥 그가 옆에 앉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같은 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