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이라는 건

by 완뚜

웃겠지? 분명 웃을 거야? 당연히 비웃을 일이지. 당연해.

그런데도 나는 믿고 싶었다. 절박했던 나의 시간들 앞에 절망으로 몸부림치던 그 시간들의 동아줄이 어리석게도 이런 것이었다는 것을, 참 별 것 아닌 것으로도 희망을 말 할 수 있구나 싶어서. 내가 그 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이런 변명거리였구나 싶어서.


악재는 겹치며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손 쓸 수 없는 악재와 불행 앞에서 모든 일은 불행으로 변하는 듯 했다. 평소 잘 아프던 아이가 다치거나 아프기만 해도 ‘그래 나는 재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며 절망했고 혹여 나의 재수 없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행해지면 어쩌지 하는 못난 생각이 지배하는 그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남편을 보낸 뒤 나는 지극한 패배주의에 사로 잡혔고 절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책임감으로 마지못해 밥을 먹고 마지못해 일을 하고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깨고 싶지 않았다. 생각은 없고 삶만 계속되는 시간이었다. 뜬금없는 눈물은 또 왜 그리 흔한지 혼자의 시간을 눈물이 잠식하느라 절망을 부채질 했다. 그만하자, 잘 해내야지 다짐하지만 그뿐이다. 나는 아마 의지도 없이 입만 나불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변하고 싶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예전처럼 살고 싶었다. 남편이 있을 때도 재미삼아 복권을 구입하곤 했었다. 습관처럼 몇 주에 한 번씩 남편이 사오던 것을 내가 사기 시작했다, 그때도 그랬다. 참 재수도 없었다. 한판에 고작해야 맞는 숫자는 두세 개, 말갛게 맞는 숫자가 보이지 않을 때면 남편과 마주보고 웃곤 했었다. 참 이렇게 맞지 않기도 어렵겠다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었다. 재미삼아 구입했던 복권이었다. 남편이 없는 지금, 문득 드는 기억에 복권방으로 향했다. 물론 여전히 맞는 숫자는 없다.


나는 여전히 남편에게 달려가고 있다. 꽤 오래 다녀오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보고 싶어 달려가다 계산해 보면 한주가 지났을 뿐이었다. 그렇게 직장생활 중에도 점심시간을 줄여가며 납골당으로 향하곤 했다. 그를 품고 있는 대리석 벽을 보며 여전히 나는 떼를 쓴다. 도대체 뭐 하는 거냐고. 나 힘들어 죽을 거 같은데 당신은 거기서 뭐하는 거냐고. 나 좀 도와달라고. 그렇게 펑펑 울고 돌아오면 일주일은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울거나 몸이 힘들어 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던 남자였다. 그러니 이렇게 떼를 쓰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가 슬퍼할 텐데. 뻔히 알면서도 그에게만 부릴 수 있는 어리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버티지도 못할 만큼 펑펑 울고 돌아온 이후로 그에게 갈 계획만 세우면 비가오고 날씨가 엉망이 된다. 그가 그럴 거면 오지 말라고 조용히 경고를 보내는 듯 느껴졌다. 하루 온 종일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사실 직장생활을 하며 더없이 많은 사람과 접촉을 하는 중이지만 나의 언어는 상실된 지 꽤 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는 다른 차원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나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입시키는 중이다. 납골당 앞에서 나는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기도 했다. 그곳에서 힘 좀 쓰라고, 아들과 살 수 있도록 복권이라도 되게 해 달라고. 그는 그런 농담을 좋아했던 남자였다.


그렇게 다녀오면 버틸 힘은 있는데 여전히 삶은 절망적이고 힘에 부쳤다. 하루가 참 지긋했다. 외로워도 이렇게 외로울 수가 없다. 남편은 잘 있는지, 너무 슬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물론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으니 좋은 곳에서 잘 지낼 거라고 말은 했지만, 그의 성격에 남아 있는 가족 때문에 슬퍼하지는 않을지, 온갖 걱정을 사서하고 있지는 않는지, 낯 많이 가리는 그가 외롭지는 않을지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그가 잘 지내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어떤 실마리라도 찾고 싶었다. 그것이 비록 억지스럽다고 하더라도 나는 찾아내야만 했다. 꿈에라도 나와 주었으면 좋겠고 기도 중에 응답이라도 받았으면 좋겠고 어떤 식이든 그에 대한 걱정을 조금 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절박하게.


며칠 전에도 남편생각을 하며 복권방에 들렀다. 아직도 복권방에 들어가는 것이 불편했다.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다만 복권을 사서 지갑에 고이 넣어두면 그때부터 남편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옆에서 나를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겠지만 하여튼 그랬다. 아마 복권이라는 작은 종잇조각 하나가 나와 남편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작은 매개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참 열심히도 살았던 그 남자의 작은 일탈이 복권이었다. 복권을 사온 날은 나와 함께 미래를 설계했었다. 건물도 사고 해외여행도 가고 친인척들에게도 나누어 주는 상상으로 환하게 웃던 그 남자를 나는 수백억 받은 것 같이 행복해 하던 그 남자를 기억한다.


처음이었다. 한판도 아니고 한 줄에 네 개의 숫자가 맞았다. 금액이 적어도 괜찮았다. 어떤 메시지를 받은 듯 가슴이 뛰었다. 남편이 이제 그곳에서 정신을 차리고 적응을 끝내고 우리를, 나를 보고 있구나 싶었다. 잘 지내고 있겠구나 싶었다. 눈물이 났다. 좋아서. 참 웃기는 일이다. 이게 뭐라고.


나는 아마도 남편과의 연결고리를 찾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이렇게 하찮은 일에도 흥분하고 행복했다. 그에게 미안해서. 너무도 미안해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잘 있는 거 맞지? 대답도 없는 그를 향해 매일 묻는 질문,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자꾸만 엉뚱한 곳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성당에서 묵상 중에 마주한 예수님의 심장에 비친 빛 한줄기 같은 가끔은 누구나 볼 수는 있지만 아무나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자연현상 같은 것에서 계속 찾는 중이다. 제발 꿈에라도 찾아와 한마디만 해 준다면. 내가 조금은 덜 슬프고 덜 미안해질까? 과연 그래지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