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았다.
주어진 삶이 바빴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욕심으로 채워진 내 심보를 만족시키기 위해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마음을 나누고 의지가 된 좋은 벗에게서 종종 듣던 말이 있다. 손가락이 부러졌냐고 전화 한통 못하냐고, 그러다 결국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 알고 있겠다며 포기를 하곤 했었다.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닌데 얼굴도 보지않고 전화로만 전하는 안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였다.
그렇게 절친이라 자부한 지인들과의 소식은 소원해졌고, 잘 살고 있냐며 가끔 걸려 오는 전화로 아직은 연결되어 있던 인연을 깨달았다. 내가 연락하지 않는 만큼 딱 그만큼 그들에게서도 연락이 줄었다.
삶의 반을 꺾어 넘어 온 나이.
살아온 만큼 추억도 되돌아 보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옛날이 좋았다고 그때가 그립다고 말하는 나이,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그들의 소식이 궁금했다. 보고 싶은 사람도 궁금한 사람도 많아졌다. 뜬금없이 연락 온 친구나 궁금해져서 물어 본 후배의 안부 속에서 나의 무심함을 질타했다. 그들은 괜찮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잊지않고 정기적으로 안부를 묻던 사람들의 연락이 끊겼음에도 무심했다. 분명 무슨 사정이 있으리라 예감했어야 했다. 그리고 멀쩡한 손가락으로 번호를 눌렀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누군가는 위암으로 위절제 수술을 했고, 누군가는 유방암으로 가슴 절제 수술을 했다. 집에 사정이 생겼다며 굳게 닫은 입을 열지 않는 이도 있다. 그동안 내게도 어딘가를 절제하는 수술을 하고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의 사정에 가슴 아팠고 함께 전화기 너머로 눈물을 삼켰다. 그동안 연락할 수 없었다는 후배의 말에 마음이 시렸다. 오죽했을까 싶어서 나도 알것 같은 그 마음이라 심장이 내려 앉는다. 눈치채지 못했던 어리석은 나를 질타했다. 꽤 정기적으로 연락해 왔던 후배였는데 언젠가부터 연락이 없었다. 무심했다. 괜찮지 않아서, 힘들어서 연락을 못했다는 후배와 한참을 울었다. 제발 건강하라며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끝말을 나누고 다음을 기약했다.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나만 생각하고 나만 아프다고 여겼던 지난 시간이 미안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지. 이제야 무소식은 결코 희소식이 아님을 깨달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소식을 전해오는 지인들은 대부분 자랑거리가 한가득이었는데 왜 몰랐을까.
생각을 해 보자. 지금 소식을 전해야 하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 누군가는 누구일까. 해 본 적 없는 전화기의 목록을 연다. 뒤늦게 그들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그래도 아직은 늦지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