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떨린다.
드디어 시간은 다가왔고 심장은 미친듯 널을 뛰는 중이다.
인생 참! 다채롭다. 총 천연색, 올 칼라판, 끝이 보이지 않는 절정의 연속이다. 드라마라면 몇개의 긴장과 사건으로 극에 치닫고 결국 해결과 결말이 만들어 질텐데. 나의 인생 극장은 아직도 드라마틱한 사건을 실타래처럼 풀어내는 중이다. 변곡점은 언제 올건지. 원하는 것만 하고 살아도 짧은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원하지 않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더 많이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인 모양이다.
뜬금없이 느즈막히 공부를 시작했다. 새 직업에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할 사람을 찾을 수 없어 이번에도 내 몫이 되어버린 시험이다. 아직은 거절하지 못하는 계약직의 인생이 조금은 비참하기도 하다. 곧 정규직 전환만 되면 할 말 다 해야지 하는 간 큰 위로도 한다. 평생 이런 용어를 알지도 못했던 나는 난독증에 걸리기라도 한듯 읽어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투덜거림을 시작했다. 코로나 시대라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된 수십차례의 동영상수업, 남의 나라 언어를 연신 뱉어내는 교수진들이 원망스러워 울고싶던 난감한 시간들도 지났고 기출문제를 추려 풀어보며 아 떨어지겠구나 절망했던 시간도 지났고 결국 예약된 시간이 다가왔다. 넉달을 기다려서 맞은 시험 날짜는 그동안의 긴 여정에 지친 나를 윽박지르고 있다.
무턱대고 요약하고 정리한 것을 외웠다. 녹슨 뇌는 삐그덕거리며 아직은 견디고 있다.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교육장에서 낯선 남자들 사이에 불편한 모습으로 실습 수업을 들었다.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허기만 속인 채 시험장에 앉았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수험번호 마킹을 확인하고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손이 덜덜 떨린다. 입시 때 보다 더 떨리는 나는 정상이 아닌거 같다. 머리는 멍해졌고 글을 읽어도 해독이 되지 않는 느낌이다. 첫 문제부터 엄청 꼬아놓은 모습이 마치 너 한번 당해봐라 하고 출제를 한 느낌이다. 옆자리에서는 벌써 시험지 뒷장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아직도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있다. 시험시간이 부족할까하는 또 다른 걱정이 늘어났다. 다행히 뒤로 갈수록 쉬워지는데 그것마저 의심스럽다. 맞나? 과연 내가 생각한 게 맞나? 두번의 검증을 거쳐 답을 옮기고 시험 시작한지 딱 25분 후 답지를 제출하고 시험장을 나왔다.
약간의 기대를 하면서도 아닐수도 있다는 작은 불안감에 다리가 휘청거리고 다 소진해버린 기운을 추스리려 카페에서 엄청 단 커피를 시켰다. 쭈욱 흡입한 커피 덕에 점심식사도 시원치 않았던 내 위가 아우성을 친다. 쓰린 속을 견디며 휴대폰을 연신 바라본다. 시험시간이 다 끝나간다. 시험이 끝나고 30분 안에 휴대폰으로 당락을 알려준다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다. 한참 지난 듯하여 시간를 확인하면 여전히 같은 시간이다. 시간이 멈추었나 싶어 옆자리를 확인한다. 다른 이들은 여전히 떠드는 중이다. 나만 스톱모션에 걸린듯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휴대폰만 보고 있다.
띠링~ 길기도 하다. 합격, 불합격의 두세글자만 보내주면 참 쉽게 알아볼텐데 긴 문장을 위로 올리며 정답을 찾는다. 합격 두글자를 한 다섯번은 확인한다. 벌떡 일어나 카페를 등지고 본관 시험장으로 돌아간다. 합격 후 자격증은 수험장에서 교부받는다는 안내를 미리 받아둔 터라 재시험 등록이 아닌 합격증 교부를 위한 발걸음이 뛸듯이 빨라진다. 점수를 확인하니 최고점 83점 중 내 점수는 80점이다. 나는 공부 좀 한 여자였다. 나의 머리를 믿을 수 없어 시간을 투자한 효과는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가족들에게 자격증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진짜 다행이다. 잘 되었다를 연발하는 가족들에게 열렬한 축하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 세시간의 귀환 길. 마음은 가볍고 크게 튼 음악은 흥겹다. 새벽에 출발하느라 잠이 모자랐지만 눈은 초롱하다. 그런데 정작 축하받고 싶은 이는 전화 한 통이 없다. 아니 없는게 아니라 못하는 것인데 이럴 때는 그가 원망스럽다. 오늘 나는 그의 축하와 그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다. 옆에 있어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약속을 어긴 그가 밉다.
상상한다. 그가 해 주었을 법한 말을.
그가 있었다면 굵은 그의 목소리에 흥분이 묻어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그렇게 건냈을 말 한마디.
'수고 했어. 맛난거 먹자. 운전 조심하고. 천천히 와.'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차창으로 미소짓는 그의 얼굴이 자꾸만 겹친다. 의도하지 않았던 눈물이 흐른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눈물 한자락을 끝끝내 흘리고야 말았다.
이렇게 기쁜 날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