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이다.

by 그방에 사는 여자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짝꿍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결혼 날짜를 잡았다고 한다. 마지막 만남이 오륙 년 정도 되었다. 그녀는 남편을 이십여 년 전에 암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두 아들을 키웠다. 철부지 막내 동생 같은, 벌레만 보면 울고 불고 기겁을 하던 친구가 남편을 보내고 어떤 시간을 살았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사랑꾼이었던 아빠를 닮아 다정한 성품이라는 큰아들은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과 결혼한다고 한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현실판 이라며 함께 웃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의 머리도 직접 말려주는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들의 신혼시절 2년 동안 옆집에 살면서 가끔 삼겹살에 소주도 마시고, 밥도 같이 먹고, 김치 담는 법을 모르는 친구에게 열무김치 담는 법을 전수해 주기도 하였다. ' 의천도룡기' 같은 무협 시리즈 비디오를 함께 보며 완주했다.


성장하면서 주변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던 나는 원래 결혼에 뜻이 없었다. 그러나 주변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결혼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에게는 아빠이자 남편 자상한 남편이었던 그는 젊은 나이에 떠났다.


그녀는 밖에서 돈 벌어먹고 사는 거 힘들다며 남편에게 잘하라고 하고, 나는 이제까지 충분히 잘했다며 이제는 좀 덜 잘 하고 살 거라며, 내게 있는 쓸쓸함 중 가장 평범한 한 가지를 골라 넉살을 떨었다. 평행선처럼 거리를 두고 흘러가는 뗏목 같은 내가 나은가, 최고의 사랑을 주고 일찍 이별한 그녀가 더 나은 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그녀 옆에는 오래된 남자 친구가 있다고 한다. 사랑받는 것도 습관일까.


더 이상 나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서 결혼을 했으나 남편은 어느 면에서는 더 나쁘지 않았고 어느 면에서는 나빴다. 겁 없는 남편은 아직도 젊은 줄 알고 저 혼자 바쁘다. 원하고 바라는 것이 옅어진 나는, 마음도 나이 들었다. 많은 것들이 상관없어졌다. 저 혼자 피고 저 혼자 지는, 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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