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는 꽃다발을 쥐고 그녀는 강으로 떨어졌다. 흐린 눈은 오필리어를 다른 세상으로 이끌고, 벌려진 입술 사이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녀는 창백하고 아름답다. 죽음의 순간이 이토록 아름답지만은 않을 터인데, 이미 타자화된 그녀는 고통마저, 죽음마저 화려하게 전시된다. 죽음으로 그녀의 존재가 완성된 것인가.
말레이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잉글랜드 서리 근교의 호그 스밀 강가에서 넉 달 동안 머무르며 그림의 배경을 그렸다. 그림 속에는 수십 종의 다양한 식물과 꽃들이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을 상징하고, 쐐기풀은 고통을 의미하며, 데이지는 순수, 팬지는 허무한 사랑, 제비꽃은 충절을 암시한다.
죽음을 암시하는 붉은색 양귀비는 유난히 강조되어 있다. 분홍색 장미와 강둑의 흰 장미는 젊음을 나타내고, 그림의 오른편 나뭇가지는 해골로 표현되었다. 넉 달 동안 머물며 그림의 배경이 되는 강가를 그렸기에, 그림에는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른 식물들도 함께 표현되어 있다. 어쩌면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강가'인 듯싶다. '가련한 오필리어'는 오히려 그림 속 강가를 장식하는 한 떨기 장미와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 햄릿'에서 오필리어는 다른 인물들에 비하여 등장하는 비중이 적다. 그마저도 누군가의 어떤 대상이 되어야만 등장한다. 햄릿에게서, 사랑을 받다가도 느닷없이 비난을 받는 대상이 되며, 아버지 플로니어스에게는 이용할만한 딸이며, 오빠 레어티즈에게는 사리분별 못하는, 단속해야 하는 동생일 뿐이었다. 오필리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들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으니 질문하지 않는다. 오빠 레어티즈가 "만약 자기의 아름다움을 달님에게라도 내보인다면 숙덕 그 자체도 중상의 매질은 피할 수 없는 법" " 최상의 안전은 두려워함에 있느니라, 청춘이란 곁에 아무도 없어도 자신에게 반란한단다"라고 말하자 오필리어는 "내게는 험준한 형국의 천당길을 안내하면서 허풍 치는 탕아처럼 환락의 길을 걸으며 자신이 말한 교훈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은 되지 마요"라고 대답한다. 또한 햄릿이 " 내 그( 욕정의) 날카로움이 무디게 하려면 신음소리를 내야 할게요"라고 다소 과한 성적 농담을 던지자 "점입가경이시옵니다"라고 받아치는 모습에서는 오필리어의 당찬 이해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인간이 타인을 진정 사랑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어떠한 사랑이라도 '자기'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보다 큰 사랑으로 이르는 길임을 젊은 날에는 알지 못했다. 사는 동안 산을 하나 넘으면 더 높은 산이 나타나기도 하고, 큰 강물을 건너면 개울가가 나타나기도 했다. 지금도 삶이 나에게 무엇을 줄지는 알 수가 없고, 선택이 어떤 결과를 데리고 올지도 모른다. 포레스트 검프의 대사처럼,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어떤 걸 가질지 모른다. 햄릿은 죽음을 선택하며 " 나머지는 침묵"이다 하였지만, 오필리어는 노래하며 죽었다. 정신이 없어질 때서야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내어 노래를 하였던 그녀는 운명을 상대하기에는 한없이 연약했다.
삶은 숨이다.
숨 쉴 수 만있으면 살아진다. 일주일 전쯤 문병을 갈 일이 있었다. 대학병원 로비는 사람이 많았다. 약을 타기 위해, 접수나 수납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복잡했다. 긴 의자 끝에 앉아 있는데 내 옆으로 이십 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 여자가 휠체어를 밀고 와 내 옆에 섰다. 휠체어에는 얼굴이 창백한 여인이 민머리에 두건을 쓰고 앉아 있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들은 그녀들이 전쟁 중임을 알리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휠체어를 미는 여자에게서 나를 떠올리고는 했다. 이제는 휠체어에 앉은 내 나이 또래의 여자에게서 나를 본다. 번호가 다 되었는지 큰 딸 또래의 여자가 서둘러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나갔다. 삶은 매 순간 전쟁이다가 어느 날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내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너무도 비 현실적으로 삶과 죽음은 한 공간에서 일어나서 영원으로 고요해진다.
생명은 아름답고 살아 있음은 행운이다. 살아가는 데는 여러 이유들이 필요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궁금한 것들이 많아서 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이유는 좀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어서다. 책도 맛있고 밥도 맛있으니, 하루가 맛있다. 연극'햄릿'에서나, 그림에서나 주인공은 되지 못한 오필리어가 물가에서 박차고 일어나 무대밖으로, 그림틀 밖으로 나간다.
'엣취' 재채기를 세차게 하며 매운 떡볶이를 먹는다.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