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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니는 집

by 그방에 사는 여자

책을 읽고 있으면 본질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낱말과 낱말 사이를 흐느적이며 돌아다니다가 문장과 문장 사이를 짚으며 세상을 읽는다. 그런 순간은 마치 좋은 친구와 있는 듯 사소하며 잔잔한 기분이 든다. 니체는 '모든 샘에 있어서 체험은 완만하다. 샘물의 밑바닥으로 무엇이 떨어지는가를 알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진실은 게으른 자가 발견하는 것이리라.



'내 이름은 빨강'에서 요르한 파묵은 '눈이 먼다는 건 고요해지는 것이라네' '그림이 가장 심오한 경지에 이르는 것은 신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때라네'라고 말한다. 세밀화를 그리고 그리다 눈이 멀게 되어도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

똑같은 그림만 그려야 하는 세밀화가가 그림의 한 귀퉁이에 자신만의 빨강을 몰래 그려 넣는다.

사람은 평생을 반복하며 살게 마련이라고. 주인공의 얼굴에 슬며시 내 얼굴을 얹는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스치듯 그려 넣는다.



배수아의 소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를 지나간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섹스의 기쁨도 모르고 사랑의 감동도 없다. 멀리로 나있는 길을 바라보면서 나는 스산한 먼지바람 속에 서있다. 초록빛 강물냄새와 오래된 풀잎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바다로 가는 길이 이쪽인가요? 하고 차를 멈추고 여행자들이 내게 묻는다. 바람이 나의 머리를 흐트러 뜨리고 길가의 키 큰 마른풀들을 눕게 한다. 그들의 차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음악이 요란하고 그들은 푸른 사과를 산다.' 무엇도 모르는 여자가 되어 있는 나는 푸른 사과를 다 팔고 바다를 찾아간다.



나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잘라서 보는 것이다. 조각난 세상을 궁싯거리며 뒤적여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몸 안에 그것들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타'처럼 몸을 조금만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읽어온 책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읽었다는 기억마저도 체에 내려지고 거친 건더기들만 남아 이리저리 할 일 없이 떠다닌다. 병맥주를 사들고 터덜터덜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밤새 책을 읽던 때가 있었다. 맥주는 마셔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더 머리는 맑아졌다. 흠뻑 빠져서 읽다 보면 새벽의 하늘이 밝아 오고 어린아이 같이 일렁이던 마음도 잔잔 해졌다.



부드럽고 따뜻한 화풍을 가진 르느와르는 여성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녀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오후의 석양은 머리칼과 볼을 붉게 물들이고 그녀는 심오한 아름다움에 빠져 있는 듯하다. 말년에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온몸에 마비가 오는 고통 속에서도 그림을 그렸던 르느와르는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때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해 지던 곳이지만 이제는 많은 이들의 각자 다른 시간을 거느리고 있는,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별처럼 느껴지는 집, 나는 잎을 다 떨구고 가지를 층층이 올려 나무로써 강건함을 띠는 벚나무를 올려보다가 기쁘게 뒤돌아 다시 섬으로 향했다.' 김금희의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이렇게 끝맺음을 했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낙원 하숙'을 떠올리는 동안 나는 옛집을 생각했다.

할머니가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다락을 정리하는 장면에서 안방에 있던 다락을 떠올렸다. 미닫이 문을 열면, 깊고 컴컴한 공간이 보였다.

부엌의 천장이었을 다락에는 별거 별거 다 있었다. 강냉이도 있고, 라면 한 박스도 있고. 라디오도 있고, 오래된 무쇠 다리미도 있었다.

기와지붕만 남기고 모두 털어내고 벽돌집으로 수리하기 전, 아궁이와 광이 있고 , 새끼 강아지 오골 거리던 나뭇간과, 기둥과 잇대어

흑갈색의 나무로 만들어졌던 찬장도 생각났다.

홈이 파인 손잡이를 옆으로 밀어서 열면 늘 간장 냄새가 났다. 찬장 안에는 고춧가루나 간장이 들어 있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잿빛의 주전자 모양의 양념통들이 있었다. 낙원 하숙에서 나는 옛집을 떠올렸다. 그것은 마치, 김 용택의 시 '귀거래사' 에서처럼 '아팠던 내 발자국을 찾아 딛으며 마을을 도는 일'과 비슷하다.


새벽 5시 일찍 눈이 떠졌다. 여름이라 가족들이 방문을 열어 놓고 자는 터라, 달그락 거리며 부엌일을 하기에는 시끄러울 것이다. 물을 따뜻하게 데워 컵에 담아 거실 베란다 옆, 바닥에 앉아 책을 읽었다. 새벽의 바람이 솔솔 날아들었다. 몸은 자꾸 바람에게로 구부러진다. 최 승자 시인은 시 '슬펐으나 기뻤으나'에서 '오른 발은 西에 두고 왼발은 東에 두어 봐도 발 아래는 여전히 세상살이의 먼지뿐 먼지 자욱한 그 속에서 어디에다 내 집을 지을까?' 하였다. 나는 여기에 집을 지었다. 내가 노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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