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모자를 벗을 때

by 그방에 사는 여자

그녀는 어떤 기분인 걸까. 가만 들여다 보아도 그녀의 표정은 알 수 없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마티스는 ‘모자를 쓴 여인’을 그리면서 감정적인 부담이 없이 색채를 자유롭게 시도했다. 그림 속에서 화가는, 작품의 모델인 아내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가 기쁜지, 슬픈지. 행복한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아내인 아멜리를 그린 것이 아니라, 색채를 실험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이렇게 푸르 죽죽 하게 그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긴 시간 동안 모델 노릇을 하였을 그녀는 작품이 완성된 후에 남편에게 무척 화를 내었다고 한다. 그림 속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림은 내어 걸리고, 유명해졌다.

화가의 아내라는 역할이 그런 것일까.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피사채가 되어 살아가는 것.

그림 속 모자는 참으로 무거워 보인다. 여자는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고 있는 듯 느껴진다. 저 모자에 담긴 저것들은 다 무어란 말인가. 모자가게를 운영하며, 살림과 육아를 하고, 특히나 남편이 결혼 전에 낳은 아이까지 키우며, 마티스의 작품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동지로써의 역할까지, 모자 속에는 많은 의무들이 담겨 있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 소피는 아버지가 남겨준 모자가게에서 모자를 수선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이 조용한 소녀가 돌아 앉아서 모자를 수선하는 동안 세월은 끝없이 등 뒤로 흐르고 그녀는 이미 늙어 있는 듯 보인다. 외출할 때는 소박한 모자를 푹 눌러쓰는 소피는, ‘황야의 마녀의‘ 저주에 걸려 꼬부랑 할머니로 변하게 된다. “이게 정말 나야? 침착해야 해, 건강해 보이고 옷도 더 잘 어울려!” 거울 속의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본 소피는 이렇게 말한다. 늙은 할머니가 되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찾아 떠나는 소피의 모습은 오히려 생기가 있고 주변의 시선에 괘념치 않는다. 단조롭고 심심하기만 한 모자 가게를 떠나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따뜻한 포용력과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할머니가 된 소피에게는 , 희롱하는 남자들도, 잔소리하는 어른도 없다. 그러니 거칠 것이 없이 자유롭다.



소설과. 영화로 모두 유명한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타라 농장을 소유한 오하라 가문의 큰딸 스칼렛은 챙이 아주 넓은 모자를 쓰고, 넓은 치마를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대 저택에서 바베큐 파티를 즐기던 중 남북 전쟁이 발발하여, 남자들은 모두 전쟁에 참전한다. 전쟁의 송용돌이 속에서 철없고 화려하던 스칼렛의 인생도 굴곡을 겪게 된다. 초반의 화려한 옷들은 점자 간소해지고, 화려한 모자대신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들이 보인다. 철없던 그녀는 삶과 죽음이라는 절박함 앞에서 생명을 부여잡는다.

화려함 속에 숨겨져 있던 스칼렛의 생명력은, 챙이 넓은 모자와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드레스를 벗어 버렸을 때 드러난다. 마지막, 모든 것을 잃고 타라 농장을 떠올린 그녀는 외친다.‘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모자 속에는 갇힌 세계가 있다.

여성은 아름답거나, 헌신적이어야 하며, 보호받아야 되는 존재로 한정된다.

그러나 여자는 생명을 키우고 전쟁 속에서 가족을 지키며, 사람을 구한다.

마티스와 아멜리는 말년에 별거를 하게 되고, 일 년 후에 아멜리는 사망한다.

예술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 온 결과,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힘든 말년을 보냈던 것일까? 그림 속 그녀를 보며 생각한다. 부디, 너무 많은 것을 내어 주지 말기를, 돌아오지 않는 기대에 몸을 싣지 말자고. 여자가 모자를 벗을 때, 진짜배기 삶이 시작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매듭은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