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은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

by 그방에 사는 여자

목소리는 늙지 않았다.

길에서 만났다면 모른 채 지나쳤을 우리들이었다.

나도 나이 들었구나, 우리는 늙어 가는구나.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지인들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감정은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싱그러운 시절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그런 줄 몰랐던 우리들의 싱그러운 시절 말이다.

동그란 안경 뒤에 맑은 눈동자와 비음이 약간 섞인 목소리 만은 여전했다.

거의 30년 만의 만남이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니 은퇴하고 공방을 한다고 말했다.

“무슨 공방을 하는데?” “매듭 공방이야” “너 대단하다, 그런 솜씨가 있구나!” 내가 말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녀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은 지 백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신혼집으로 찾아갔을 때 그녀는 아기를 낳고 아직 부기가 안 빠졌다며 멋쩍게 웃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결혼을 하고 일을 쉬고 있다고 말했던 그녀였다.

“너 대단하구나! 애기 키우면서 임용고시를 봤구나! 너 대단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은퇴를 했다는 그녀의 말에 내가 말했다.

“사는 게 바빠 그동안 연락하고 지낸 고등학교 동창도 없다야, 이제는 바쁜 시절도 다 지났으니 연락하며 지내자 “

그녀가 말했다.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서, 뷔페 접시를 앞에 두고 그렇게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잔치 국수가 붇기 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혼식의 주인공들은 둘 다 눈물 바람이었다. 듬직한 신랑은 축가를 부른다고 자세를 잡더니 노래를 시작도 하기 전에

꺼이꺼이 울었다. 옆자리의 누군가 ”최소 5년 감이다 “라고 속삭였다. 5년 동안 우려먹을 오늘의 그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아빠를 닮아 다정한 성품으로 잘 큰 모습이었다. 혼주석에 앉은, 고등학교 2년 동안의 짝꿍은 푸른 치마를 입고 의젓해 보였다. 제법 어른 같은 모습이었다. 신부 엄마는 분홍 저고리를 입고 연신 눈가를 훔치고, 신부 아버지가 쓰고 사회자가 대신 낭독한

편지는 잔잔하고 일상적이어서 깊은 울림이 있었다. 다정한 편지를 쓸 줄 아는 아빠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귀여운 신부가 친구의 며느리가

된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키만 컸지 막내 동생 같기만 하던 친구가, 어느새 아들을 장가보내고 시어머니가 된다.

그 세월을 보면서 나의 세월을 읽는다. 예쁘고 착하기만 하던, 보고 싶었던 친구, 숙이는 전날 밤늦게 아파서 못 온다는 톡을 남겼다.

건강을 기도 한다는 답글을 달며, 우리, 건강하게 살아서 행복하자는 말을 남겼다.

신랑의 할머니이자 친구의 시어머니는 앞자리에 앉아서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들을 닮은 손자의 모습에서

20년 전, 젊은 나이에 떠나간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아들의 제사를 직접 지내신다는 친구의 시어머님에게도

매듭짓는 날이었다. 똑똑하고 자상하던 그는 철부지 아내와 어린 아들 둘을 남겨 놓고 일찍 떠났다.

대학을 다니는 동생과 살며 나는 백화점으로 출근을 하고, 친구와 남편은 신혼을 시작하던 그때 2년을 옆집에 살았다.

대문을 같이 썼으니 한집이나 진배없었다. 친구의 큰아들은 내가 많이도 안아 주었다.

분유를 먹고 트림을 할라치면 얼마나 토했던가. 쉽사리 지워지지 않던 분유냄새는 지금도 기억난다.



달마 대사처럼 짙고 부리부리한 눈썹을 치켜뜨던 남편은 요즘,‘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처럼‘ 축 처진 눈썹이 되어가고 있다.

결혼식에서도 남편은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결혼식때와 문병 갔을 때, 딱 두 번 본 친구 남편의 모습이 생각난다며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누가 보면 절친인 줄 알겠네! “ 내가 한마디 했다.

남편의 주변에는 아픈 사람이 몇 명 있다. 그들이 안타깝고, 남의 일 같지 않으니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결혼식에서 딸들을 시집보내는 모습을 상상했나.

남편은 예전에는 화를 내었다면, 요즘은 자주 삐친다. 방문을 빼꼼 열고는,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나를 향해 뭐가 기분 나쁘다며 한참을 떠들다 문을 꽝 닫는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문을 열고, 또 다다다, 하다가 문을 꽝 닫는다. 참나, 차라리 자상한 쪽으로 여성호르몬을 발전시키지, 사춘기 아이처럼 땍땍

거리니 헛웃음이 나왔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픽픽 거리는 남편은 애처럼 늙고 있다.



한운성 작가의 그림 “매듭”은 굉장히 힘차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화면 중앙에 중심축으로 위치한 ‘매듭‘을 바라보고 있자니 긴장이 된다.

잡아당기면 곧 끊어질 것 같았다. 작가가 처음으로 ‘매듭‘을 그린 것은 1988년 작품 ‘받침목’을 제작하던 중 그것을 묶은 새끼줄을 그리면서부터였다.

그림 ‘매듭’의 소재는 새끼줄이다. 일상에서 새끼줄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림처럼 사물을 확대해서 그린다면 개미도 공룡으로 보일 것이다.

한운성 작가가 그리고자 하였던 것은 사물로써의 새끼줄 ‘매듭’이 아니라 그것이 그려지고, 보이는 상황이 소재가 되는 것이다.

실물의 모습에서는 그림처럼, 극적인 긴장감, 화면을 가득 채우는 에너지를 만들 수 없다.



주말 아침,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고, 현미밥과 하얀 쌀밥을 따로 안쳐서 밥을 했다.

현미밥은 나와 남편이 먹었다. 프린트물을 잔뜩 뽑아서 투명 화일에 끼운 둘째 딸을 뒷자리에 태우고 길을 나섰다.

딸아이는 긴장하며 면접장으로 들어가고, 나와 남편은 학교 앞으로 걸어 나와 사거리 모퉁이에서 짬뽕밥과 짜장면을 먹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라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남편은 편의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셨다.

밥을 먹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 짜장면을 먹은 남편은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어제부터 속이 더부룩하다는 남편이었다.

“그러게 이제는 부인 말도 좀 들어 봐” 내가 말했다.

세 시간을 기다렸다 만난 딸은 열심히 준비한 것은 하나도 안 나왔다며,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다며 웃었다.

곧바로 집으로 가기는 싫다는 둘째와 함께,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던 저녁을 먹고 골목과 거리를 걸었다.

딸이 좋아하는 닭꼬치도 먹고, 내가 좋아하는 땅콩 빵도 먹었다. 분홍 체크무늬의 토끼 인형 키링을 산 딸은 폴짝 뛰며 좋아했다.

거대한 산은 막상 올라가 보면, 야트막한 언덕일지도 모른다. 가보지 않았기에 지레 겁먹고 마음의 확대경을 들이미는 것이다.

경험의 부재는 본질보다는 상황에 사로 잡히게 한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연약한 재료를 가지고 가닥가닥의 작은 매듭을 짓는다.

그 매듭들은 평범한 날들에 섞이고 녹아서 점이 되어 간다. 만약, 오늘의 의미를 반추해 보게 되는 날이 온다면, 끝맺음과 시작이 공존하는

날이었다고, 평범하게 흘러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는 지신 밟기 하듯 자근자근 살아가는 것이다.



매듭공방을 한다는 그녀의 폰에서 슬쩍 살펴본 작품들은 다양했다.

키링이나 브로치도 있었고, 노리개라던지 팔찌, 목걸이, 컵 받침 같은 소품이나 가방, 그리고 메트나 테이블 보도 있었다.

그녀의 삶 속의 어떤 것들이 알알이 맺혀서 어여쁜 매듭을 짓게 하였을까.

어떤 삶은 옹이가 되고, 어떤 것은 매듭이 되어 작품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일까.

매듭은 사실이 아니라, 현상이다.

“와 줘서 고마워, 우리 자주 보고 지내자! “라고 말하던 아들을 결혼시킨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서로의 매듭의 순간에 만나는 것도 꽤 괜찮은 노릇이다.

아들을 결혼시킨 친구의 부탁으로 갑자기 급조한 단톡방이 며칠 부산하다가 잠잠해졌다.

그 단톡방은 누군가 꽃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도 없이 적막해질 것이다.

내 인생에 그동안 사라진 인연의 방들이 몇 개 인가. 그 방들에서 엮은 매듭들로 나는 섬섬히 수를 놓아 오늘의 작품 ‘매듭’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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