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수'의 그림 '모성의 나무'에는 다복한 이야기가 있다. 엄마는 흔들의자에 앉아 나직이 자장가를 부른다.
엄마가 어르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하늘을 난다. 거리를 두고, 엄마와 아이는 함께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길거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 그리기 시작했다는 모자상. 아이는 하늘을 보느라, 엄마는 아이를 보기 위하여 고개는 외로 꺾어져 있다.
집은 잡다하다. 뒤섞여있는 감정들을 헤집으며 균형을 맞추고 아이를 업고 있다. 함께 꿈을 꾸고 새를 노래한다.
모성을 환상적으로 그린 작품을 만날 때면 나는 불편한 감정이 생긴다. 끝없이 그리울 재간이 나에겐 없기 때문이다.
한 복판에 멀뚱이 서서 두리번거린다. 제대로 온 것일까. 허방다리만 짚으며 걸어 온건 아닐까.
돌아보고 돌아보는 말들에서도 답이 찾아지지 않을 때면 걷는다. 늦은 저녁의 천변은 옅은 물안개가 뿌연 김처럼 깔려 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습자지처럼 주름진 천변 둘레길을 걷는다.
선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이 뱅글뱅글 돌기만 한다. 세 바퀴를 돌고 갈데없으니 마트나 간다.
50% 세일하는 자반고등어 한 손, 30% 할인하는 호주산 갈빗살 한팩을 장바구니에 넣는다.
1+1 하는 두부도 요래조래 쓸모가 많다.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양파가 제일 무겁다.
배추 한 망에 5760원, 세일코너 앞에서 생각에 잠긴다.
김장은 언제 하나, 주말에는 결혼식도 있고, 둘째 대입 면접도 있고, 다음 주에나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영수증에 -22150원이 적혀 있다. 아싸! 돈 벌었다. 밤바람은 차갑고, 장바구니는 무겁다.
묵묵하게 걷는다. 더러는 답답하다고 왜곡되고, 어느 땐 느리다고 오해받는 이 묵묵함.
넷플릭스 시리즈 ‘퀸스 캠빗’에서 주인인공의 양엄마( 앨마 휘틀리 부인)에게 위로받은 기억이 떠오른다.
체스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주인공 ‘베스 하먼‘이 심리적으로 많이 의지 했던 그녀는 알콜성 간염으로 갑자기 호텔방에서
사망하게 된다. 양 엄마는 주인공 ‘베스 하먼‘이 체스 대회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여행하고, 쇼핑하고, 먹고 마시며 지냈으니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갑자기 사망하자 주인공은 커다란 상실감에 휩싸였고, 양엄마의 잠옷을 입으며 그리워하였다.
별반 하는 일이 없어 보였던 양엄마는 ‘베스 하먼‘에게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것을 주었던 것이다.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과, 편들어 주는 것, 엄마 노릇이 그 두 가지면 되지 않겠는가.
번역가 황석희는 인터뷰에서 ’꾸역꾸역‘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단어는 힘들게 하는 무엇인가 있지만 매우 주체적 의지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묵묵함’이라는 단어는 ‘꾸역꾸역’의 사촌쯤 될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계속해 나가는 그 어떤 것들이 있다.
길가에 잘 마른 여나무 같은, 은행잎들과 나뭇잎들이 수북 했다. 밟고 지나가니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다. 속에, 고갱이 같은 여나무들을 양껏 품고 있는 삭정이처럼
묵묵하게 살아도 살만 할 것이다. 나뭇단 한단 이고 저녁 산을 내려오는 그 겨울날의 엄마처럼, 매일을 동이며 당신의 말들을 찾아 불을 지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