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거나, 따뜻하거나

by 그방에 사는 여자

식물원일까? 온실일까? 이 인성 화가의 그림 ‘온일'은 따뜻한 하루를 그린 그림이다.

모처럼만의 외출인 듯, 모자와 양산을 쓴 여인들이 보이고,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보인다.

이 그림에서도 붉은 기운이 감돌기는 하나 화가의 다른 그림들처럼 붉은색이 강하지는 않다. 약간 붉고, 적당히 따뜻하다.

1930년대라는 시대를 생각하면 참으로 생경하기도 하고 이국적인 그림이다.



따로 장난감이 없던 어린 시절 나는 흙에서 뒹굴었다. 겨울날의 놀이터는 주로 마당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좋은 놀이터는 옆집 마당이었다.

응달이라 눈이 채 녹지 않아서 질퍽하던 여느 마당들과는 달리 양달이었던 옆집 마당은 한나절 햇볕에 잘 마른 광목 이불처럼 고르고 판판했다.

물기가 잘 빠진 그 마당의 흙은 부드러워서 구멍도 잘 파졌고 한쪽 눈을 감고 가늠하는 대로 구슬이 잘 굴러갔다. 흙은 붉은빛이 감돌았다.

요즘으로 치면 황토였을 것이다. 마당을 헤집으며 구슬치기, 자치기, 땅따먹기를 하고 있노라면, 몸집이 작고 허리가 기억자로 구부러진 옆집 할머니가

한참 후에 지팡이를 짚고 나오셔서 마당을 다 파놓는다고 꾸지람을 했다. 나와 동네 꼬마들은 모두 달아났다가 할머니가 집안으로 들어가시면 또다시

그 마당에 가서 흙을 파고 놀았다. 다음날도 또 그 마당에 가서 놀았다. 그러다 할머니가 나오는 기척이 들리면 '와'하며 도망갔다가 다시 몰래 그 마당에 가서 놀았다.

알고도 넘어가고 모르고도 속고, 흙에서 뒹굴었다. 미술 시간에 찰흙을 가져오라고 하면, 논에 나가 삽으로 흙을 파고 구덩이 속에 깊숙이 손을 넣으면 찰기가 도는

붉은 흙이 미끄덩하게 만져졌다. 그 찰흙을 한 뭉텅이 떠서 달력종이를 뜯어 밥풀로 붙여서 만든 종이봉투에 담아서 학교에 가져갔다.



김 인혜 작가의 책 ‘살롱드 경성'에서'이 인성' 화가의 그림을 처음 보았다. 화면 가득 덧칠한 붉은 흙과 푸른 하늘은, 이국의 어디쯤으로 보였다.

그림에서 보게 된 붉은 흙은, 어린 시절 내가 몸 담갔던 그 흙이었으나 다른 흙이기도 했다. 처한 현실을 뛰어넘고, 벗어나고픈 욕망이 느껴졌다.

현실에 환상을 덧칠하는 것, 그것 또한 예술가의 삶이다. 천재 화가라 일컫어지던 이 인성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에

어이없는 총기 사고로 사망했다. 후에 소설가 최 인호는 한국일보에 ’ 누가 천재를 쏘았는가'라는 글을 써서 그의 천재성을 알리고, 죽음을 애도했다.

‘예술가는, 천재의 예술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는 신에게 게서 태어날 뿐이다. 왜 신에게서 태어난 그를 죽여야만 하는가.

나는 총을 쏘지 않았다고 자위하지 마라. 나는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다고 자위하지 마라. 나는 하층계급을 멸시했던 양반 계급이 아니야라고

자위하지 마라.'라고 인간의 위선에 대한 비판을 했다. 이 인성의 그림 ‘경주 어느 산곡에서’는 고갱이 보이고,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보고 그린

‘아리랑 고개‘에서는 세잔의 생투빅투아르 산 그림들이 떠오른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이인성은 자신의 세계를 더욱 확고히 하는,

더는 누구와 닮지 않은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이 끝나고, 요즘 집에서 때아닌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와 함께 미술관에 다녀왔다. 지난여름에 이른 예매해 둔 전시였는데 둘째가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가게 되었다. 함께 미술관에 간 것이 거의 십 년 만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도시락을 싸갖고 주말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었다. 아이는 가끔 친구들과 지하철을 탈 때면, 어렸을 때 승강장에서 오들오들 떨며, 지하철을 기다리며 마셨던

핫초코를 떠올리고는 한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도 친구들과 만났을 때도 부러, 자판기에서 핫초코를 빼서 마셨다고 한다. 어렸을 때에는 멀미를

심하게 해서 한 시간 이상의 거리는 버스를 타지 못했는데, 요즘은 버스를 타도 멀미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을 했다.



전시회는 사람이 많았다. 아이는 오디오를 대여해서 듣고, 나는 그냥 천천히 보기로 하였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세잔 부인의 초상‘이 눈길을 끌었다. 초상화 속의 그녀는 마치 뒤편 배경 속으로 서서히 스미어 사라지고 있는 중으로 보였다.

많은 것들이 희미해지는 시기였을까. 집안일에 지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기진 맥진해서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먹고사는 것이야 어쨌든 명성은

그녀의 몫이 아니므로. 그림을 바라보며, 알 수 없음에 많은 질문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림 속 저곳은 어디일까.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림을 눈앞에서 바라보는 데도,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던지는 질문들은 하등 쓸모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황금색의 오래된 액자의 틀만이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림 앞에 서면 끝없는 심연에 돌멩이를 던지는 느낌이 든다. 돌은 가라앉아 흔적도 없는데 질문은 가슴에 남는다.

살아가는 일에 해답이 없는 것처럼, 그림에도 답은 없다. 전시 출구 쪽에는 또 다른 세잔 부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온실 속의 세잔 부인의 초상‘이었다. 그림 속에서는 좀 더 생기가 돌고 입체적인 세잔 부인을 볼 수 있었다. 이 진숙 작가의 책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에서 보았던

‘붉은 옷의 마담 세잔‘이 떠올랐다. 이 진숙 작가는 ' 초상화 속 오르탕스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이거나 억압받는 존재 이거나 이 모든 관계에서 체념하거나

싫증을 내고 있는, 한 마디로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처럼 보인다.' ‘이 그림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 좌절의 기록이 솔직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 성복 시인은 '시는 언어로 표현할 없는

것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라고 했다. 예술은 끝없는 실패의 기록일 때

울창해지는 '무한 화서'일 것이다. 세잔은 29점이나 되는 아내의 초상화를 그렸다. 사과 한 알을 그리더라도 아주 오랫동안 세밀하게 그렸던 세잔은 그림을 그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9점의 초상화가 그려지는 동안 세잔 부인은 얼마나 오랜 시간 모델이 되어 비스듬히 앉아 있어야 했을까.



나는, 르느와르의 ‘꽃다발‘이라는 그림 앞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리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반들반들하고 윤기가 흐르던 녹색 꽃병은 르느와르가 무척 아끼던 니스가 칠해진 꽃병이었다고 한다. 가운데에 꽂힌 양귀비의 붉은빛과

주변의 하얀 장미와 주황색 꽃들이 어우러져 다발을 이루고 있었다. 한껏 요염하고 붉은 양귀비가 눈이 띄는 듯하더니, 하얀 꽃잎은 더욱 청순해 보였다.

밝은 창문의 빛까지 그려 넣은 녹색의 꽃병은 고려청자를 떠올리게 하고, 연 갈색의 굽은 살짝 덧입혀진 녹색 물감 몇 방울까지도 정겹고 조신한 느낌이었다.

꽃들의 조화로움과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배포가 큰 꽃병을 받치고 있는 굽의 자연스러움까지,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존재할 것에 헌신하는 조화로움을 느꼈다.



미술관 근처의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이 무엇인지 물으니, 딸은 르느와르의 ‘꽃다발‘과 ’ 눈 내리는 풍경‘이라는 그림을 골랐다.

꽃다발은 무척 아름다웠고, ‘눈 내리는 풍경‘은 뭔가 잘 모르겠는, 그런 감정들이 섞여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딸은 칠리 새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가격이 좀 비쌌지만 시켰다. “엄마 어렸을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많이 온 것은 알겠는데, 어려서 그런지 잘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고 그때 먹었던 것들이 기억나

미술관 안에 있는 식당에서 스파게티를 먹었고, 옥상 카페에서 추러스를 먹은 생각이나"라고 아이가 말했다. 오래전, 예술의 전당 앞에서 강남역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겨울의 어느 저녁 나는 아이들에게 “나중에 크면 엄마랑 이렇게 다닌 거 기억해야 해 “라고 말했었다.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닌 딸은 엄마와 오롯이

둘이서만 함께한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림을 보고, 칠리새우와 자장면과 잡채밥을 먹었다고 기억할까. 어두운 저녁, 사당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니,

익숙한 카페와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버스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 큰 도시는 작은 것들이 겹쳐지고 복사되어,

병렬되고 늘어나는 병풍 같았다. 익숙함에서 새로움들이 생겨나고, 익숙함들이 오래 묵어 잊히면 뜻밖의 것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이 인성 화가의 그림

‘해당화'처럼. 발치에서 무심히 자라난 나의 해당화는 어느덧 꽃을 피우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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