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신화는

by 그방에 사는 여자

멸치 똥 따면서 한 해의 마지막날 밤을 보냈다.

연예대상도 시들하고 보신각 타종도 물려서 넷플릭스에서 영화 보면서 멸치 똥을 땄다.

똥만 버리려고 하는데도 쟁반에는 버릴 것들이 수북해졌다. 버릴 것 추리다가 세월 가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심심해서, 남편이 족구 모임에서 타 온 와인을 머그컵에 따랐다. 시간이 해를 넘어갔다.

새해가 왔으니 지나간 해는 순식간에 헌 해가 되었다.

운동화가 닳도록 부지런히 걸어온 지난해는 김장독처럼 묻어 둬야 한다.


필사해 둔 최 승자의 시를 펼쳐서 읽는다.

' 무덤을 파헤치지 말아라

무덤을 작은 풀밭으로 두어라

누구의 기억도 아닌

바람만 살짝 스쳐가게 하라'

' 세상의 무덤이란 무덤은 모두

이름 없는 무덤이 되게 하라

그 위로 누구의 슬픔도 아닌

그저 달빛만 머물다 가게 하라

그저 꽃 한 송이 고요히 바스라진 듯만 하여라.'

마지막 구절, 고요히 바스라진 듯만

하여라'는'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서서' 김소월의 싯귀 만큼이나 애절하다.




인간은 소멸할 것을 알면서도 살아간다.

밤이 되면 다시 그 자리에 누울 것을 알면서도

아침이면 일어나 어제의 숟가락으로 오늘의 밥을 먹는다. 사는 동안 목도 하는 죽음들은 영영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지만, 그리워하길 멈추지 않는다.


천공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 태어난 '티탄'은 뿔이 잘린 채 온몸에는 철 가시를 두른 채 서있다.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처럼, 뿔이 잘린 거인은 힘을 잃었을까, 잃었다고 생각했을까.

‘이불‘ 작가의 ’ 티탄’이 걷기를 멈춘 거인인 반면, ‘자코메티'의 걷는 남자‘는 소멸할 것을 알면서도 걸어가는 형상이다.

진흙을 이겨 부친 듯 한없이 유약해 보이는 남자는 기필코 걸어간다. 걸어가고 있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듯이. 그는 행복한 것인가.

‘까뮈’가 말했듯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 충분하며,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새해 첫날에는 시댁 식구들과 고깃집에서 돼지갈비구이를 먹었다.

큰 아주버님은 퇴직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둘째 형님은 '국민연금‘이 자식보다 낫다는 얘기를 했다. 여자 친구가 있는 서른다섯의 큰 집 둘째 조카는 결혼하라는 잔소리에 시달렸다. 둘째 형님네 둘째 조카가 결혼 날짜를 잡았다고 한다. 재혼한 지 이십 년이 넘은 둘째 형님은, 키가 작다느니, 월급이 얼마 안 된다느니 하는 말로 은근 며느리감을 깎아내렸다. 나는 괜히 부아가 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예비 조카며느리의 편을 들었다. 이야기는 다시 흘러갔다. 나는 죄다 남의 이야기인 양 들으며 돼지고기를 상추 겉절이에 감싸 먹었다. 구십이 되신 어머님은 잡채와 양념게장을 여러 번 더 달라고 했다.

전날,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은퇴를 한 둘째 아주버님은 술병이 나서 갈빗집에는 못 오고

큰집 소파에 드러누웠다.


어머님과 우리 집 막내는 칠십 살 차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막내의 소식을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일 연속극 같다.


큰 형님이 직접 들판에서 캔 냉이를 꼭꼭 눌러서 잔뜩 주셨다. 집에 와서 흙이 잔뜩 묻은 냉이를 여러 번 씻어서 된장국을 끓였다.

보글보글 끓는 냉이 된장국 사진을 형님께 전송했다. 감사하게 잘 먹겠다는 문자도 했다. 원래 답장이 없으신 형님이 이튿날 오전에

전화를 했다. ‘자네 된장국 맛있게 끓였더라' 라고 말했다. 된장국 얘기로 시작해서 통화는 어느 결에 한 시간이나 이어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며느리 밥 얻어먹어야 하는 나이에 아직도 시집 살이 한다. 얼마 전에 난생처음으로 시어머니께 대들었다'형님, 이야기는 늙지 않는다.




저녁밥을 해놓고 집 근처 도서관으로 갔다. 큰딸은 알바를 가고, 둘째는 이제 성인이라서 술집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며 술 마시러 나가고 남편은 운동을 다녀와서 피곤한지 자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두 시간가량 책을 읽었다. ‘김 훈’의 산문집 ’ 허송세월‘을 읽었다. 며칠 동안 도서관에서 읽고 있는 책이다. ‘김 훈‘의 문장들은 부드럽고 유려해서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나룻배에 앉아 있는 듯한데, 넋을 놓고 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뱃사공은 빠르게 노를 저어 벌써 저만치 달아나 있고, 나는 허겁지겁 쫓아가는 모양새가 된다.

“살아서 걸어가는 몸은 그 앞에 펼쳐진 세상을 낯설어한다. 걸어가는 몸속에서 이 낯섦은 친숙함으로 바뀌는데 몸은 그 친숙함에 매달리지 않는다.’ 문장들을 간신히 쫓아갔다 되돌아오며 읽는다. 고두밥 같은 문장들을 꼭꼭 씹는다. 내 몸은 시간을 통과하여 지나가고 한결 가벼워졌다.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오니 날이 추웠다. 카페로 들어가서 따듯한 차를 시키고 한 시간 넘게 앉아 글을 썼다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카페를 나와서 마트에서 장을 봤다. 떡볶이 밀키트가 1+1이라서 얼른 장바구니에 넣었다. 장을 본 후 알바가 끝난 큰딸을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냉동실에서 어묵을 꺼내 마트에서 사 온 밀키트로 떡볶이를 만들어 주니 딸과 남편이 맛있다며 먹었다. 작품 ‘티탄’은 아무리 봐도 낯설다. 그깟 뿔 좀 잘렸다고 뭐 그리 가시를 뾰족하게 세우고 있을 일인가 싶다가도 만일 내가 서서히 나도 모르는 새에, 늙어 가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서른 살에서 예순 살로 확 늙어 버렸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불행할 것이다. 종내에는 죽을 줄 알면서도, 새로운 낯섦을 맞이하는 것은 용기이며 행복이다. 격을 것을 겪어가며 서서히 나이 들어가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저 유약한 거인도 서있을 만큼 서있다가 지루해지면 한 발 떼어 볼 것이다. 지리 멸렬 하고 지루한 것들을 반복하며, 그럴 것을 알면서도 다시 걸으며 유한함을 맞이하는, 그때 비로소 거인의 신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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