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카페 죽순이 클럽

by 그방에 사는 여자

창밖은 어느새 캄캄해졌다.

박모의 어둠이 밀려와 하늘을 덮었다.

시간은 정지한 듯 고요하건만 멈추지 않고 하루를 접는다.

세상이 생겨난 이래 정지된 시간이란 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던 20대 여자가 앉아 있던 옆자리는, 30대의 남자로 바뀌어있었다.

남자는 노트북을 연신 두드리며 보험 상담을 하고 있었다.

띄엄띄엄 앉아있는 사람들은, 한 공간에 있지만 익명성의 자유로움 속에서 연결되어 있는 섬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일정 시간의 공간이 보장되며, 아주 많이 고독해지지 않아도 된다.

오래, 자주 드나들다 보니 눈에 익은 사람들이 있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하얀색 윗도리를 자주

입는 3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는 내가 항상 앉는 바 테이블 바로 뒤쪽에 앉아 있다. 그녀는 늘 핸드폰에 줄 이어폰을

꽂고 영상을 보며, 디저트와 스무디를 먹는다. 화장실 옆, 구석자리에 항상 앉아 있는 50대의 숏커트 머리의 여자는 다리를 꼬고 앉아

아이패드로 영상을 보는 모양인데 에어팟이나, 줄이어폰을 끼지 않는다. 아마도 소리를 줄여 놓고 자막으로 보는 것 같다.

적당히 외로울 자유 속에서 우리는 섬이 된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라고 했다.

시인은 그 섬에 도착했을까.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열망에 빠져 있는 한 이미 당도한 섬은 그 섬이 아닐 것이다.

장 그리니에는 ‘섬’에서 ‘내 마음속 그리움을 자아내는 행복은 덧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항구적인 상태이다' 라고 했다.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단순하고 항구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듯 느껴진다. 쇠라는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2년의 시간 동안 공을 들였다.

시카고 미술관에는, 쇠라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남긴 수많은 스케치와 드로잉, 40여 점 이상의 유화 습작이 남아 있다. 그는 오랜 시간을 들여 무엇을 구현하고자

했을까. 그랑자트 섬은 유흥과 매춘이 성행했던 곳이라고 한다. 쇠라는 이 섬을 평온한 휴식의 공간으로 그렸다. 속 됨 속에 예술은 피어나고, 찌꺼기는 거름이 되니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20대 청년 두 명이 하얀 윗도리의 여자 옆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쌀반 보리반의 잡곡밥처럼 욕을 반씩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다 들락 거린다. 통유리로 너머로,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슬쩍 쳐다보았다. 카페 안에는 흡연실이 있다. 불콰하게 술이 취한 60대쯤의 남자들이 소란하게 들어와 카페 가운데 단체석을 점령했다.

그중 한 명이 자기가 산다고 큰소리친다.

현금으로 할 테니 깎아 달란다. 흠칫 놀라 돌아보니 앳된 얼굴의 알바생의 모습이 보인다. 실랑이가 오래가자 일행중 한명이 남자를 잡아끌어 자리에 앉힌다.

물감을 섞지 않고 깨알 같은 점을 찍어 완성해 나가는 점묘화처럼, 자기 색을 잃지 않을 때 점묘화는 완성된다.

나는 우리 동네 카페 죽순이가 되어, 단순하고 항구적인 상태의, 나의 점묘화를 채워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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